[인터뷰]66세 임억규씨,서울대서 박사학위

  • 입력 1998년 2월 19일 19시 41분


“늙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갈고 닦은 기술과 지식을 그냥 썩일 수는 없었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 60대 만학도 임억규(林億圭·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씨가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수여받는다. 교수도 정년퇴직을 하는 66세의 나이에 학위를 받다보니 한국통신에서 근무하는 막내아들(33)과 동년배인 후배들과 나란히 졸업식장에 선다. 임씨는 특히 서울대와 반세기의 역사를 함께 한 인물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53년 4월에 부산 대신동의 ‘판잣집 교정’에 입학했죠. 동숭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마침내 관악캠퍼스에서 학업을 끝내게 돼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임씨가 박사학위 취득을 결심하게 된 것은 ㈜미원의 부장으로 근무하며 조미료업계의 실무자로 명성을 날리던 40대 중반. 젊은 연구원 대다수가 박사출신인 점을 알고 자극을 받게 된 것이다. 세번의 도전끝에 80년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바쁜 회사일 때문에 교과과정만 이수했을 뿐 논문 제출은 엄두를 못냈다. 결국 논문제출기한도 넘겼다. 임씨는 학위를 따지 못한 아쉬움을 10년여 동안 ‘글쓰기’로 풀었다. 86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잇따라 시조도 발표했다. 서울대에서 불가피하게 학위를 따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특례조치가 발표된 것. 이때부터 논문자격시험을 위해 학교에 나가 후배들 틈에 끼여 전공과목을 청강하고 독일어 공부도 시작했다. 밤에는 논문작성에 매달렸다. 임씨의 박사논문을 지도한 권영명(權寧命·62)교수는 “대학원 선배인 임선생의 논문은 핵산조미료를 개발하면서 축적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 학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임씨는 “나이가 많아 일선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저술활동을 통해서라도 지식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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