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납치사건’이 발생한 지 40여일이 흐른 73년9월24일 제88회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던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
40대이면서도 동안(童顔)인 신민당 김영삼(金泳三)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국무위원석에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납치사건에 대한 추궁을 예상하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김의원은 “김종필총리는 국민 앞에 성실한 자세로 답변해 주시기 바란다”고 일침을 가한 뒤 “김총리는 막연하게 말로만 (납치사건 범인을) 잡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잡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해주시고 그때까지 잡지 못하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총리는 다소 곤혹스런 표정으로 답변에 나섰다. 김총리는 “김영삼의원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하겠다”고 입을 연 뒤 “김대중씨 사건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은 저희나 김의원께서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총리는 이어 “김의원께서 답변을 요구했지만 언제까지 진범들을 잡겠다고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방 안보면에서 잘못이 있다면 책임은 국무총리에게 있다”고 답변했다.
김총리는 그해 가을 정기국회가 다 끝날 때까지 김수한(金守漢·현국회의장)의원 등 신민당 및 통일당 소속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며 박정희정권을 옹호해야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피해자였던 김대중씨는 5일 후면 대통령이 된다. ‘동지’의 고통을 추궁했던 김의원은 대통령직을 마치고 퇴임한다. 당시 국정의 2인자로서 정권의 정당성을 방어해야 했던 김총리는 이제 피해자였던 김대중씨와 협력, ‘김대중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다시 총리가 될 예정이다.
이 사건과 인연이 있는 또 다른 정치인은 한나라당 이한동(李漢東)대표. 당시 서울지검 검사였던 이대표는 김대중씨가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뒤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동교동을 방문, 김씨와 첫 대면을 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