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실패한 대통령」의 퇴장

  • 입력 1998년 2월 20일 19시 33분


작년 2월25일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TV카메라 앞에 서서 취임 4주년 담화를 읽어내려갔다. 한보사건과 김현철(金賢哲)의혹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을 때였다. 취임 4주년 담화가 대국민 사죄담화가 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시점에서 그는 회고했다. “기나긴 반독재 민주화투쟁에서 저에게 희망을 준 것은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준 것도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은혜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저는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한국병(韓國病)을 고쳐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주자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 「빌린 머리」의 공허한 정책 ▼ 그러나 이제 나흘 뒤 임기 5년을 마치고 청와대를 떠나는 그의 꿈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국민은 철저히 등을 돌렸고 그가 국민에게 물려준 조국은 자랑스럽기는커녕 절망과 고통으로 뒤덮인 파산 직전의 나라다. 그의 말대로 그의 대통령 5년은 ‘영광은 짧고 고뇌는 긴 세월’이었다. 5년 전 상도동을 떠나 청와대로 향하면서 그는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서 돌아오겠다”고 주민들에게 다짐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신변안전마저 걱정하며 상도동으로 돌아가는 ‘고개 숙인 남자’가 됐다. 유달리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그로서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건설’을 펄럭이는 기치로 내건 문민정부의 출발은 화려했다. 권위주의정권의 잔재 청산과 성역없는 사정(司正)을 통한 부정부패 척결은 신속하고 과감했다. 그는 한때 90%의 인기를 자랑하는 당당한 대통령이었다. 공직자 재산등록과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선거법 개정을 통한 돈 적게 쓰는 정치의 추구 또한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확실하게 이해하고 추진한 개혁은 초기의 부패척결과 정경유착 근절작업이 끝이었다. 그 이후 문민정부가 추진한 각종 개혁안은 그의 ‘빌린 머리’들이 내놓은 정책들이었다. 교육대통령이 되겠다, 환경대통령이 되겠다, 사법개혁 노동개혁 금융개혁을 하겠다, 정보화개혁을 하겠다, 행정을 개혁하고 규제완화를 하겠다는 등등 이른바 ‘21세기를 위한 세계화개혁’에 관한 한 그는 ‘대독(代讀) 대통령’이었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실패 요인이었다. ‘고독한 결단’과 ‘깜짝 쇼’, 아들을 포함한 측근의 부패, 망사(亡事)가 된 인사, 기득권세력의 반발 등이 그를 실패하게 한 또 다른 요인들임은 이제 다 안다. 그는 대통령 재임중 제2의 건국을 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한다. 사실일지 모른다. ‘칼국수정치’는 그의 선의(善意)를 이해하는 하나의 증거다. 특히 그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긍정적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는 그 다져진 민주주의의 바탕에서 성취된 것이다. ▼ YS는 DJ의 반면교사 ▼ 아쉬운 것은 정치란 선의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의를 위임할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정치의 성패는 갈릴 수 있다. 특히 머리를 빌려 써야 할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있어도 정사(政事)를 믿고 맡긴 자가 현명하지 못하고 적재(適才)가 아니어서 패란(敗亂)을 부른 임금이 혼군(昏君·어리석은 임금)”이라는 옛사람의 경고는 두고두고 음미할 만 하다. 김대중(金大中·DJ)차기대통령은 김영삼대통령과의 청와대 마지막 주례회동에서 “퇴임 후에도 평화 속에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패했지만 선의를 가진 대통령에게 보내는 송사(送辭)다. YS는 DJ의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그 ‘선생님’의 평화는 결국 DJ의 성공 여하에 달렸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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