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년 전 “성공한 대통령이 돼서 돌아오겠다”며 떠났던 서울 상도동 사가(私家)에 오늘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돌아간다. 김대통령의 5년은 나름의 공과(功過)가 없지 않겠지만 총체적 경제파탄에 모든 것이 묻히고 있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아야 할 우리의 심경은 참담하고 착잡하다.
지난 5년은 세계가 냉전 종결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한 시기였다. 게다가 한국은 군사적 권위주의 청산의 과제를 함께 안고 있었다. 35년만의 문민정부는 그런 국내외적 변화의 격랑을 수용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통령이 ‘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건설’과 ‘세계화’를 지향한 것은 바른 선택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그런 목표를 이룰 만한 철학과 전략과 프로그램을 갖지 못했다. 국가경영의 준비가 미흡했던 김대통령은 개혁을 제도화하지 못한 채 독선 독주 독단에 흘렀고 인기를 의식한 ‘깜짝쇼’에 의존하곤 했다. 빌리겠다던 ‘머리’도 제대로 빌리지 못한 데다 평균 11개월 이상을 한 자리에 두지 않을 만큼 각료를 자주 바꿨다. 3당합작정권의 한계로 개혁의 주도세력을 형성하기 어려웠던 터에 그나마 안일과 자만에 빠졌다. 그 결과 각종 부패척결 정치개혁 금융실명제 등의 개혁조치가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닥치거나 측근에서부터 무너져 결국 형해화(形骸化)했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은 경제마저 정치감각으로 다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같은 과시적 정책을 폈다. 거기에다 관료들의 무능은 경제운영과 외환관리를 방만하게 만들어 끝내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불렀다. 김대통령의 5년은 마치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떠올랐다가 허무하게 스러졌다. 한때 그토록 열광하던 국민은 이제 상실감과 좌절감을 되씹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5년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5년의 세월은 차기정부와 국민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김대통령은 군(軍)의 정치화를 차단했고 지방자치를 전면실시했으며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르는 등 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개혁과 세계화의 당위(當爲)를 제시했다.
그런 민주화의 토양이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탄생을 도왔다. 실패한 개혁과 세계화는 김차기대통령의 숙제로 짐지워졌다. 지도자의 독선 독주 독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김차기대통령에게 쓰디쓴 교훈으로 남았다. 지도자가 지도력을 갖지 못하고 국민이 그런 지도자와 함께 안일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국민은 아프도록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