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영/「공존의 정신」

  • 입력 1998년 2월 23일 19시 48분


요즘 프랑스에서는 16세기를 피로 얼룩지게 한 종교내전에 종지부를 찍은 낭트칙령 공포 4백주년을 맞아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신교도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이 칙령으로 프랑스는 36년에 걸친 동족상잔의 비극을 끝내고 17, 18세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해 유럽의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신교도이면서 국내 안정을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낭트칙령 공포라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앙리4세는 지금도 프랑스 국민이 가장 추앙하는 왕이다. 공포 4백주년을 맞아 저작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학술행사가 열리는 이유는 이 칙령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낭트칙령은 당시 가톨릭과 신교 어느쪽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신교도측은 제한된 지역에서만 허용된 종교의 자유가 불만이었고 가톨릭측은 신교를 인정한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바로 이점 때문에 낭트칙령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역사학자 장 보레로는 “국민은 비로소 끊임없는 내전보다는 불만스럽더라도 함께 공존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이 정신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교훈”이라고 말한다. 이질적 정치집단끼리의 동거(코아비타시옹) 전통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톨레랑스)의 정신은 이 칙령을 통해 비로소 싹트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곁들여진다. 어찌 프랑스뿐이겠는가. 남북분단 지역감정 노사문제 여야대립 등 프랑스보다 훨씬 많은 갈등요인을 안고 있으면서 타협과 조정의 사례가 드문 우리에게 ‘공존의 정신’이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김상영<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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