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겨울방학때였다. 12박13일동안 민요연구회 동아리식구들과 함께 진도에 ‘남도 들노래’를 배우러 갔다.
진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인간문화재 조공례할머니댁이 있었다. 우리는 그 할머니댁에서 남도 들노래를 배웠다. 처음엔 모두 다 열심히 했다. 선배들은 수업시간 외 자유시간에도 TV나 라디오를 일절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오로지 민요전수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흘쯤 지나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온종일 서로 얼굴만 보는 것도 지겨웠다. 민요를 제대로 못따라 부른다고 혼나기만 하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갑자기 선배가 잠자고 있는 우리를 깨웠다. 산에 올라갈 것이니 외투를 입으라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한 우리가 대문을 나서는 순간 할머니댁의 진도개가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온 동네의 진도개가 다 같이 짖어댔다. 우리는 쫓기듯 헐레벌떡 뒷산에 올라갔다.
산에 오르자 선배는 우리에게 소리를 마음껏 질러 보라고 했다. 몸을 비틀든 배를 움켜잡든 혼신의 힘에서 나온 소리를.
처음엔 서먹했지만 한 두명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뒤에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는 선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오면서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길 30분. 어느새 붉은 해가 두둥실 솟아오르고 있었다. 볼이 발그레 달아오른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할머니에게 소리가 작다고 혼나지 않았다.
지금 그때 배운 들노래 가락과 노래말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세상살이에 지칠 때면 진도 그곳에 가서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다.
서영주(LG패션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