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정석/그리운 시아버님

  • 입력 1998년 2월 27일 07시 30분


제과점이나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된 전병 상자를 보면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난다.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고 시댁에 첫 인사를 갈 때 뭘 가지고 갈까 걱정이 많았다. 그때 대전에 사는 큰 형님이 권해주신 게 전병이었다. 곁에 두고 심심할 때 자주 꺼내 드시던 바삭바삭한 과자.

학창시절 국어책에 ‘한눈 없는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시아버님은 ‘한눈 없는 아버지’셨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한 눈과 두 손가락을 잃은 시아버님은 92년 설날을 보내고 난 뒤 위암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어려운 시절 시골에서 자라 교육을 받지 못한 시아버님은 60여년의 세월을 고집 하나로 사셨다. 되돌아보니 살아온 환경 때문에 황소고집 외에는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었나 보다. 하지만 당시에는 왜 그렇게 황당하고 야속하게만 느껴졌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할 때 지금은 타계한 김동리 정비석님을 비롯한 문학의 대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시아버지를 꿈꿨다. 인생의 황혼을 맞아 더 여유있고 부드러워진 인품들. 단장을 든 백발신사와 낙엽지는 오솔길을 걷고 모과차를 마시며 문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언제 화를 내실지 몰라 불안하고 논리와 상식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라 심기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던 시아버님. 나는 ‘한눈 없는 어머니’처럼 그분을 마음으로 부정했던 것일까. 난생 처음 입관을 지켜보며 인생의 허무함과 알지 못할 죄책감에 오열했다.

어느덧 시집온 지 아홉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자주 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5남매를 교사와 약사 연구원으로 훌륭하게 키우신 시아버님. 집안에선 옹고집이었어도 남에게는 인정을 베푸셨기에 그 덕으로 지금 자식들이 편히 살 수 있는 것 같다. 이제야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헤아릴 줄 알게 된 이 철부지 막내며느리의 마음을 시아버님은 아실까. 이 달에 6주기 기일이 있다. 주말에는 깨전병 밤전병 콩전병 등 여러가지 종류의 전병을 한아름 안고 시아버님께 다녀와야 겠다. 벌써 청아한 산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정석(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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