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1919년 3·1운동 직후 서울에서 공부하다 휴학 또는 퇴학당해 귀향한 김백평 이상호 김수옥씨 등 서울유학생들이 서로 돕자는 ‘맞돕회’를 조직, 신학문운동을 벌이다 30년대 후반 항일청년본부를 만들기 위해 당시 여수 부호였던 김영준씨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
이들은 사재를 털고 김영준씨의 도움으로 자금이 모이자 일제의 충무공 말살정책으로 버려져 있던 진남관(鎭南館) 좌청(左廳) 건물을 구입해 허허벌판이었던 관문동에 옮겨 지었다.
해방 후 우여곡절 끝에 여수시 소유가 됐고 한동안 시립도서관으로 사용하다 57년 여수문화원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40여년 동안 이곳을 지키던 문화원이 지난달 붕괴위험이 높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 지금은 관리인조차 없이 버려진 상태다.
여수시는 이 건물을 복원하기는 커녕 유지관리가 어렵고 도시계획선에 물려 있다는 이유로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문화원장 문정인(文貞寅·61)씨는 “당시 우국청년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원형대로 복원, 청소년 교육장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수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