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새벽 국회를 통과해 19일 정부로 이송된 새 정부조직법은 법률적으로 오는 6일까지만 공포하면 되도록 돼 있다. 이렇게 급박하게 공포 시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새 법을 서둘러 공포한 것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 인준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풀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총리인준 거부로 생긴 ‘행정공백’을 ‘행정혼란’으로 압박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로 새 정부 출범이 모양 사납게 되긴 했지만 이런 식의 무리한 초강경 대응수법을 현명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재정경제부 등 개편되는 7개부처는 장차관이 없어 결재를 못하고 기획예산위 등 신설 부처는 당분간 장관과 직원이 없는 부처가 된다. 대외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외교통상부장관이 없는 ‘창구 없는 나라’가 되었다. 야당압박 전술이라면 대가가 너무 큰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총리인준 문제는 어차피 내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여야 영수간에 이미 합의된 상태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도 있는 문제다. 국회가 공전되면 공전된 대로, 인준이 거부되면 거부된 대로 그 시점에서 다시 최선의 대안을 야당에 제시하고 인내심 있는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여소야대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의회정치의 정도(正道)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야당이 정도를 벗어난다고 해서 여당이 강압과 술책으로 대한다면 여론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날 우리의 파란많은 의회정치 역사가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언제까지나 국정을 표류시킬 수 없다는 김대통령과 여당의 초조한 심경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렇다고 위기에 기댄 밀어붙이기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정치란 언제나 상대가 있는 법이다. 진정한 정치력은 그 상대에 대한 간곡한 설득에서 나온다는 점을 여당은 명심하기 바란다. 이미 명분에서 거대야당에 앞선 김대통령이 이번의 성급한 결정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김대통령의 정국운영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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