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조직법 기습 공포

  • 입력 1998년 2월 28일 19시 43분


새 정부조직법이 28일 기습 공포 발효됐다. 이로써 조직개편으로 신설되는 부처는 이름은 있으나 장관과 직원을 확보하지 못한 ‘유령부처’가 되고 통합 개편되는 부처는 당분간 기능을 이중으로 수행해야 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기형(畸形)일 뿐 아니라 행정혼란이 가히 무정부상태라고 해야 할,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월 17일 새벽 국회를 통과해 19일 정부로 이송된 새 정부조직법은 법률적으로 오는 6일까지만 공포하면 되도록 돼 있다. 이렇게 급박하게 공포 시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새 법을 서둘러 공포한 것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 인준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풀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총리인준 거부로 생긴 ‘행정공백’을 ‘행정혼란’으로 압박하려 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로 새 정부 출범이 모양 사납게 되긴 했지만 이런 식의 무리한 초강경 대응수법을 현명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재정경제부 등 개편되는 7개부처는 장차관이 없어 결재를 못하고 기획예산위 등 신설 부처는 당분간 장관과 직원이 없는 부처가 된다. 대외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외교통상부장관이 없는 ‘창구 없는 나라’가 되었다. 야당압박 전술이라면 대가가 너무 큰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총리인준 문제는 어차피 내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여야 영수간에 이미 합의된 상태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도 있는 문제다. 국회가 공전되면 공전된 대로, 인준이 거부되면 거부된 대로 그 시점에서 다시 최선의 대안을 야당에 제시하고 인내심 있는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여소야대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의회정치의 정도(正道)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야당이 정도를 벗어난다고 해서 여당이 강압과 술책으로 대한다면 여론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날 우리의 파란많은 의회정치 역사가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언제까지나 국정을 표류시킬 수 없다는 김대통령과 여당의 초조한 심경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렇다고 위기에 기댄 밀어붙이기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정치란 언제나 상대가 있는 법이다. 진정한 정치력은 그 상대에 대한 간곡한 설득에서 나온다는 점을 여당은 명심하기 바란다. 이미 명분에서 거대야당에 앞선 김대통령이 이번의 성급한 결정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김대통령의 정국운영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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