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답사]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입력 1998년 3월 4일 08시 24분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년을 살아숨쉬는 상쾌한 균형과 절제.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고려 11세기·국보18호)에 대한 한 미술사학자의 예찬이다.

그러나 얼른 보면 단정하고 깨끗할 뿐 특별한 화려함이나 기교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 이 무량수전이 한국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뿐히 고개 쳐든 지붕의 추녀 곡선,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 간결하고 절제된 주심포(柱心包·처마의 무게를 받쳐주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맞춰댄 나무장식) 등. 무량수전의 미학이야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진정한 비밀은 ‘착시(錯視)로 인한 사물의 왜곡’을 막아내는 절묘한 아이디어에 있다. 안허리곡(曲), 기둥의 배흘림 안쏠림 귀솟음 등이 그것이다.

안허리곡은 건물 가운데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이고 귀솟음은 건물 귀퉁이쪽의 기둥을 가운데보다 높게 처리한 것을 말한다. 건물의 귀퉁이쪽 처마와 기둥은 실제 높이보다 밑으로 처져보인다. 사람의 착시 때문이다. 안허리곡 귀솟음은 바로 착시를 막기 위한 절묘한 고안이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기울어지게 세운 것으로 안허리곡의 시각적 효과를 높여준다. 또한 안허리곡 귀솟음과 함께 절묘한 곡선을 만들어 건물의 앞면을 마치 오목거울처럼 휘어져 보이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곡선이 살아 움직인다는 점. 곡선의 환상적인 율동은 한순간 보는 이의 넋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하다. ‘직선’의 목재가 창출해낸 ‘곡선’의 완벽한 미학인 셈이다.

기둥 중간부분을 약간 튀어나오게 한 배흘림 기둥 역시 무량수전의 매력. 중간을 볼록하게 함으로써 기둥 머리부분이 넓어보이는 착시현상을 막아준다. 또한 건축물의 무게가 기둥의 중간에 집중된다는 건축구조역학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외부에 그치지 않는다. 보통의 불전(佛殿)은 내부 정면에 불상이 놓여있지만 무량수전의 불상(소조여래좌상·국보45호)은 왼쪽끝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왜 이처럼 특이하게 불상을 배치한 것일까. 불상을 정면에 배치하면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공간감각을 확보할 수 없다. 반면 무량수전은 왼쪽끝에 불상을 배치, 먼거리의 공간감각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 불상 앞에 늘어선 기둥(열주·列柱)과 겹쳐짐으로써 보통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함까지 더해준다. 고려인의 탁월한 미적 감각이다.

내부 천장 역시 압권. 무량수전의 천장은 막혀 있지 않다. 뚫려있기에 내부 공간은 더욱 웅장해 보인다. 길고 짧고, 굵고 가는 여러 부재들은 간결 견실한 절제미를 자랑하고 기둥 대들보 서까래의 정갈한 조화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음률을 자아낼 정도다.

무량수전, 그 안팎을 돌아가며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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