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 리포트]스코틀랜드 「실리콘글렌」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20분


런던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북쪽을 향해 6시간여를 달려가면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다다른다.

에든버러는 고풍스런 석조건물로 가득찬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옛 시가지를 확대하면서 계획도시로 세운 신도시(New Town)조차 18세기에 만들어졌다.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에는 지금 광속(光速)으로 작동하는 광학컴퓨터를 개발하는 열기가 뜨겁다.

광학컴퓨터란 전기로 작동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빛에 의해 작동하는 컴퓨터다. 전자 대신 레이저광선의 광자(光子)가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이다.

에든버러 외곽 헤리엇와트대의 ‘스코틀랜드 광전자협동연구소(SCIOS)’는 광학컴퓨터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이 곳은 헤리엇와트대와 에든버러대 글래스고대 세인트앤드루스대 스트라스클라이드대 등 스코틀랜드의 5개 대학이 힘을 합쳐 만든 연구소다.

지금은 광학컴퓨터의 전단계로 기존 반도체를 이용해 칩을 만들고 칩과 칩 사이에 빛으로 작동하는 회로를 구성한 광전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이 컴퓨터를 구성하는 반도체의 칩과 칩 사이에는 전선의 역할을 하는 아무런 금속도 없다. 광선이 지나가는 ‘빈 공간’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최신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처리속도가 3백㎒에 이르지만 전기 저항 때문에 그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CPU에서 하드디스크 플로피디스크 CD롬 등 주변기기나 메모리반도체에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저항으로 인해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회로로 구성된 광전자컴퓨터는 이런 염려가 없다. 항상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말 세계 최초로 두 개의 칩 사이에 빛이 오가면서 작동하는 초보적인 광전자컴퓨터를 선보였다. 연구진은 5년 안에 광전자컴퓨터를 실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존 컴퓨터보다 1천배 이상 데이터처리 속도가 빠른 고성능컴퓨터가 등장하게 된다.

이같은 미래형 컴퓨터는 사회전반의 정보화 수준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헤리엇와트대의 앤드루 워커교수는 “광전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로봇의 이미지 정보처리 능력이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향상되고 일기예보가 훨씬 정확해지는 등 여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광전자컴퓨터 개발 후 기존 반도체를 이용하지 않은 순수한 광학컴퓨터를 만들어낸다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다.

에든버러에서 발길을 돌려 서쪽으로 1백10㎞를 달려가면 스코틀랜드 최대의 산업도시 글래스고가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첨단 정보화연구는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를 잇는 실리콘글렌 지역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글래스고 시내 중심가의 언덕을 올라가면 1451년에 세워진 글래스고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끼로 띠를 둘러 청록빛을 띠는 석조건물 사이를 지나가면 나노기술의 요람인 ‘켈빈 나노테크놀러지센터’가 나타난다.

‘나노’란 10억분의 1을 의미하는 접두사. 조너선 위버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해 초소형반도체 개발에 필수적인 온도측정기를 개발해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온도계인 이 측정기의 굵기는 불과 50㎚(나노미터)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인 1백㎛(마이크로미터)의 2천분의 1에 불과하다.

반도체 연구진이 부닥치는 큰 문제 중 하나는 칩의 처리속도와 비례해 발생하는 열이다. 이 열로 인해 심한 경우 칩 전체가 타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칩의 어느 부분에서 과열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 이 연구소의 개가로 초소형 반도체 회로설계에 돌파구가 마련됐다.

켈빈 나노테크놀러지센터는 또 세계에서 제일 작은 3㎚ 크기의 전선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올렸다.

이렇게 작은 크기는 일반 물리학이 아닌 양자역학의 적용을 받는다. 이 전선은 물체라기보다는 입자라고 보는 것이 낫다.

연구소측은 “이러한 전선으로 회로를 구성하면 슈퍼컴퓨터를 손목시계 크기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스코틀랜드 실리콘글렌의 연구진은 현 단계의 정보화 기술을 한 차원 뛰어넘는 연구로 미래의 정보화를 설계하고 있다.

백파이프의 고장이 최첨단 전자 정보통신 연구단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에든버러·글래스고〓김홍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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