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 성공을 축하하는 관계자들의 덕담이 계속됐다. 그중 문화행정을 책임진 한 인사의 말이 씁쓸한 기억으로 잊히지 않는다. 발언의 요지는 ‘정치하느라 너무 바빠서 오페라를 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 리골레토를 보니 오페라가 이렇게 좋은 것인지 처음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음악계 인사들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새 정부의 문화행정 책임자가 음악인들 앞에서 한 첫 인사말이 ‘오페라가 이렇게 좋은 것인지…’였으니 실망하는 것도 당연했다.
문민정부 5년간 문화행정의 주요 책임자들을 일별해 보면 책임을 맡기 전까지는 문화나 예술과는 별관계없이 지낸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연극이나 영화 등에 별다른 관심도 없고 요즘 베스트 셀러가 뭔지도 모르는 인사들이 정치적 고려로 하루아침에 문화 예술행정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현상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비전이 불분명한 인사들에게 5년간 문화행정을 맡긴 결과 거듭된 시행착오의 폐해는 너무도 컸다. 국가의 보고이자 민족문화의 얼굴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식견있는 문화행정 책임자라면 국가의 보고를 임시 장소에 전시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산의 새 박물관이 빨라야 2003년 개관이니 2002년 월드컵 관광객들에게 현 임시박물관으로 어떻게 한국이 유서 깊은 5천년 역사의 나라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도 과연 문화행정을 제대로 해나갈지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문화 예술계에 폭넓게 일고 있다. 새 정부의 청사진을 담은 1백대 과제에서 문화예술 관련은 두 항목에 불과한데다 ‘문화 예술 창작활동 활성화와 향수(享受)기회 확대’처럼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특히 부처 직제개편안을 만들며 ‘국립지방박물관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고 밝힌 데 이르러서는 실망을 넘어 현실도 모른 채 탁상공론으로 문화를 죽이려 한다는 강한 반발까지 사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이같은 혼선이 이는 이유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자신은 정치인 가운데 문화 애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뜻을 헤아려 행정적으로 뒷받침할 참모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서관중에도 문화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인사가 눈에 띄지 않고 새 문화관광부장관도 여성운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1세기는 정보화사회가 될 게 분명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문화의 세기’가 될 전망이다. 김대통령과 새 정부는 문화를 정치 경제의 격랑속에 표류시키지 말고 건져내 챙겨주기 바란다. 챙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문화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게 효과적이다. 전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청와대의 밤은 쓸쓸하다 못해 고독하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전처럼 저녁나절 연극을 보거나 음악회장을 찾는다면 공연홍보도 되고 국민과 호흡도 같이 할 수 있으며 고독하지도 않아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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