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발표 따로 현장 따로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49분


‘발표 따로, 현장 따로.’ 서울시가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추진한다는 ‘가격파괴 거리 조성’이 그런 식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서울시는 2일 홍보자료를 통해 “지난달부터 음식점 옷가게 등 서비스 업종의 가격을 내리도록 독려한 결과 지금까지 90여곳의 가격파괴거리를 조성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자료에는 “시민들로부터 모처럼 실질적인 물가안정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는 자화자찬도 붙어있다.

그러나 가격파괴 업소를 찾은 사람들은 발표와는 전혀 딴판인 현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 가지 메뉴중 한 가지만 싸게 팔면서 가격파괴 업소라는 문패를 내건 음식점이 부지기수였다. 종전 가격을 그대로 받는 업소가 있는가 하면 구청 직원이 다녀간 뒤 다시 가격을 원위치시킨 곳도 많았다.‘파괴’가 아닌‘기만’이었다.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업소 주인들은 “구청에서 제발 1개 메뉴만이라도 값을 내리면 가격파괴 업소가 될 수 있다고 졸라 마지못해 그러겠노라고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어떤 주인은 “우리도 살기 어렵다. 왜 공공요금은 올리면서 개인 서비스요금만 가지고 난리냐”며 서울시의 이중적인 물가정책을 탓하기도 했다. 연초부터 개인 서비스요금 인상을 강하게 억제하면서도 하수도 지하철 버스 택시 요금은 줄줄이 올리느냐는 지적이다.

발표만 믿고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가격파괴 거리’를 찾아간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서울시에 속았다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서울시는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4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진영<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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