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색정국의 해법

  • 입력 1998년 3월 8일 18시 5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이래의 교착정국이 3주째에 접어들었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암초에 부닥친데다 ‘북풍(北風)’수사까지 겹쳐 여야대립과 의정공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접점이 마련되지 않으면 경색정국은 끝없이 장기화하고 경제도 훨씬 위태로워질 것이다. 어렵게 유지돼온 대외신인도마저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 소모적 정쟁(政爭)이 이렇게 국정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야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풀어야 한다.

정치권의 주된 시비는 지난 2일 몸싸움으로 중단된 김총리인준안 표결의 처리방법에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재투표’, 거대야당 한나라당은 ‘개표’ 주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3당 원내총무회담이 몇차례 열렸으나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해 국회는 파행과 공전만 거듭했다.

애당초 한나라당이 당당하게 무기명 비밀투표에 임했더라면 오늘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소속의원들의 행동통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내부사정 때문에 형식적으로만 비밀투표를 했을 뿐 실제로는 공개투표나 다름없는 변칙적 방법을 썼다. 그렇다고 투표함을 몸으로 막은 여당측 처사가 옳은 것도 아니다. 여당의 물리적 저지를 정당화시킬 만큼 한나라당의 행동이 투표의 형식요건을 안 갖춘 것은 아니다. ‘재투표’와 ‘개표’ 주장은 모두 명분상 한계를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개표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여권이 한나라당의 투표를 유효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여야 합의 없이는 투표함을 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여권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본란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김종필씨의 결단을 촉구했으나 김씨는 불응했다. 이제 여권은 또다른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야당에 명분을 주어 재투표로 유도하는 방법도 그 하나다. 가령 2일의 표결에 관해 여야 모두 유감을 표시하고 야당이 김종필씨에 대해 문제삼는 유신시대 등 과거의 정치행적을 김씨가 사과 또는 해명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마침 김대통령은 지난 6일 본보 발행인 김병관(金炳琯)회장과의 만찬에서 여야 동수(同數)의 전권대표단을 구성해 정치현안을 대화로 푸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여권은 여야 중진회담을 야당측에 제안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각 정당이 의원총회라도 열어 회담대표를 선정하고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해 경색정국의 해법을 함께 찾는 것이다.

중진회담이 열리면 김종필씨 문제를 포함한 모든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대타협을 이뤄내고 여야는 그 결과에 전면승복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야당측도 긍정적으로 수용했으면 한다. 경색정국을 무한정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발생한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 정치인들, 특히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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