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준비 안된 여야

  • 입력 1998년 3월 9일 19시 49분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벌써 잊었나.”

흥청대는 강남 유흥가와 길거리를 메운 자동차 행렬을 겨냥한 지적이 아니다. IMF사태도 잊은 듯 정쟁(政爭)에 몰두하는 정치권의 모습에 대한 시민들의 지적이다.

김종필(金鍾泌)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에서부터 꼬인 대치정국이 ‘북풍(北風)수사’에 대한 야당의 반발로 더욱 경색되자 시민들은 불안감을 넘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문제는 여든 야든 평행선을 달리는 대치국면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치부한 채 “내 갈길을 간다”는 결의만을 다진다는 점.

정국경색의 원인은 결국 자기구덩이에 틀어앉아 상대방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는 여야 모두가 떠안고 있는 셈이다.

여당의 경우 ‘변칙투표’란 이유로 물리력을 동원해 총리임명 동의투표를 무리하게 저지한 것도 문제지만 하필 이럴 때 북풍수사를 시작, 야당을 자극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보복 의도가 없다’고 해명하나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여당이 왜 자꾸 당내 온건론자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여당이 누구를 상대해야 할지 모를 만큼 당론조차 오락가락하는 야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총리임명동의안 처리와 일반안건의 ‘분리대처 불가론’을 당론으로 결정했는데도 9일 맹형규(孟亨奎)대변인은 “여당이 추경예산안을 수정해오면 임명동의안과 분리, 처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

여당측은 “한나라당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도대체 자기 얘기인지 당의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비판한다.

여당할 준비가 안된 여당과 야당 준비가 덜된 야당이 벌이는 어설픈 정치게임에 국민만 불안하다는 얘기다.

이동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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