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부부도 행복을 꺼내쓰고 꺼내써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행복의 화수분’이 돼야한다는 거지.”
9일 오후 양수리를 향해 차를 모는 LG패션 주해석씨(32·디자이너·서울 강남구 논현2동). 2년 전인 96년 3월14일 양수리 한강변에서 아내에게 청혼하면서 동원했던 말들을 회상해 본다.‘세상에 태어나 내 입에서 나온 말중에 제일 근사했었지….’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번개맞아 쭈뼛 선듯한, 잔디인형의 머리같은 헤어스타일. 매일 바뀌는 컬러풀한 옷차림. ‘번개머리를 모르면 산업스파이’라는 말이 돌 정도인 LG패션의 명물.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주씨가 한때는 앞머리가 텁수룩한 촌뜨기였음을. ‘돌쇠’에서 ‘첨단 패션회사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멋쟁이’로 그 혁명적인 변신의 계기는 아내 이정화씨(27·인하대대학원)와의 만남이었다. 95년 봄 한 보석가게의 인테리어 공사 지도를 나갔다가 미모의 멋쟁이 아르바이트생 아가씨를 발견, 끈질기게 따라다닌 지 10개월쯤 됐을 때부터 프로포즈 계획을 세워나갔다. 은밀히 답사를 다닌 끝에 결정한 청혼장소는 양수리 못미쳐 강변 철길. ‘그땐 참 치밀했는데.’
청혼승낙 2주년을 기념해 오후 휴가를 내 나온 모처럼의 평일 부부 나들이. 청혼 후 처음 나선 양수리 드라이브에 아내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강남구 논현동 다세대주택을 떠나 올림픽대로 미사리 팔당대교 팔당댐을 지나 40분(논현동 기점 주행거리 33㎞)만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소재 ‘봉주르’카페에 도착했다.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좌석. 이른봄의 쌀쌀함을 덜어주는 모닥불. 카페 바로 앞을 지나는 중앙선 열차…. 2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철길 입구에 철조망을 쳐놓은게 변화라면 변화.
“그땐 저런 철조망이 없었는데, 그치 오빠?”
2년 전 그날. 카페에서 대추차를 마신 뒤 손을 잡고 저물녘의 강변 철길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철길을 막아서며 느닷없이 던진 말이 ‘화수분을 아니?’였고 곧이어 본론으로 들어갔었다.
“정화야, 나는 대학때부터 자취생활을 했잖아. 혼자 산 게 벌써 10년이 넘어. 그래서 그런지 컴컴한 방이 너무 싫어. 이젠 정말 퇴근 후에 불켜진 집에 들어가고 싶다.”
한동안의 어색한 침묵. 강 하류쪽 팔당댐을 응시하던 이씨가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오빠, 그럼 내가 불켜줄게.”
프로포즈를 하기 전엔 ‘만약 승낙을 받으면 너무 기뻐 강에 뛰어들고 싶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강건너 산뒤로 넘어가는 오렌지빛 석양때문일까, 착 가라앉은 마음에 ‘아 이제 이뤘구나’하는 안도감이 제일 먼저 찾아왔다. 그날부터 6개월 후인 96년 9월 마침내 결혼.
“그때 청혼하던 날 오빠가 구사했던 단어들 조금 유치했던거 알아?”
“무슨 소리야. 도서관을 다 뒤져서 찾아낸 표현들인데. 내가 얼마나 준비했었는지 알아?”
〈양수리〓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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