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민병욱/대통령과 「쓴소리」

  • 입력 1998년 3월 12일 19시 47분


국민회의의 한 고위당직자에게 들은 얘기다.

“2월25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식장에서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추기경은 ‘김대통령이 정말 잘해야 나라가 산다’며 ‘무엇보다 직언(直言)고언(苦言)을 쓴 표정 짓지 않고 다 들어줄 수 있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하더라.” 그 당직자가 이 얘기를 김대통령에게 그대로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말 자체가 직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김추기경은 직언 얘기를 하면서 “나도 여러번 청와대에 가보았지만 그곳에서는 생각한대로 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추기경이라면 정치적인 욕심도 없고 또 어느 정파의 편에 선 언행도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직언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 것으로 보아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열린 얘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국민회의 의원들 중에는 벌써부터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은 애써 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늘었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고 어렵게 만나도 다른 할 말이 많은데 대통령이 들어 기분 나쁠 얘기를 일부러 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이란 그런 자리다. 무슨 얘기든 다 듣겠다며 직언을 구해도 그 앞에서 쓴소리를 마음 놓고 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김대통령 자신도 아마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무회의도 청와대가 아닌 정부 세종로청사에 가서 주재하고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도 “자유롭게 소신껏 토론하라”며 활발한 발언을 유도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얼굴을 붉힐 만한 말을 한 참석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는 정치싸움이 야당 탓 뿐만이 아닌 여권의 잘못도 크고, 그래서 설익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인데도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꼬인 정국의 핵이라 할 수 있는 ‘김종필(金鍾泌)총리’문제만 해도 그렇다. 여권에서는 한결같이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밀려서는 안된다며 강경일변도의 목소리만 내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가 “‘김종필 총리’는 국민 60%가 찬성하는 사안” “총리서리체제도 법상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어버렸으니 그 앞에서 누가 “그렇게 일을 풀어서는 안된다”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말이 났으니 얘기지만 김총리서리 문제에 대해서는 여권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서리처럼 ‘양보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만큼 했으면 김대통령은 김총리서리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이고 이젠 김총리서리가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회복을 국정의 최우선과업으로 삼아야 할 마당에 정치문제로 경제가 발목잡힌 상황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이냐는 우려가 시중에 팽배해 있다.

이럴 때는 쓴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총리서리체제의 합헌 또는 위헌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경제부터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엔 김총리서리가 배석해도 좋다. 장소도 청와대가 아니면 더 좋을 것이다.

헌법에도 없는 직함인 ‘총리서리’가 국회에 나가 추경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느니 마느니 입방아만 찧을 게 아니라 국민에게 그런 모습이 어떻게 투영되느냐를 솔직히 묻고 의견을 구했으면 좋겠다.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국민의 정부’가 되지 않겠는가.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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