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65)

  • 입력 1998년 3월 13일 10시 2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3〉

“저는 바그다드까지 가는 나그네로서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이 도성에 당도하였습니다만, 대체 왜 이 도시를 떠나라는 거요?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있는 거요? 그리고 당나귀 등에 실린 시체는 대체 어찌된 거요?”

오빠가 이렇게 묻자 검은 옷의 사내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이 도시에 머물러 있다간 당신도 이 사람들처럼 당나귀 등에 실려 가게 될 거요. 이 도시에는 지금 전염병이 퍼져 있어서 누구든 한번 감염되기만 하면 살아날 수 없단 말이오. 이 사람들도 간밤에 죽었는데, 나는 그 시체를 매장소로 옮기는 중이라오.”

그제서야 오빠는 도성 안이 텅 비어 있는 까닭과 검은 옷의 사내가 당나귀 등에 사람의 시체를 싣고 가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지난 며칠 동안 사막을 헤매느라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터라, 비록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장 도성을 떠날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빠는 검은 옷의 사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아무리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해도, 나는 지금 허기와 갈증으로 한 발짝도 옮겨놓을 수 없는 실정이오. 그러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줄 수 없겠소?”

그러자 검은 옷의 사내는 오빠의 처지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날 따라오시오.”

이렇게 말하고 검은 옷의 사내는 오빠를 사원 뒤에 딸린 부속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걷어냈습니다. 천을 걷어내고 보니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긴 젊은이로 오빠보다 서너살 정도 많아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은 기품있어 보였으며, 그의 이마에는 그의 높은 지성이 느껴졌습니다.

“자, 어서 드시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이 도시를 떠나도록 하시오. 알라께서 당신을 지켜주시는 동안 말이오.”

검은 옷의 사내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오빠 앞에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오빠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고 마시며 물었습니다.

“그럼,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겁니까?”

“다 죽은 건 아니오. 근 삼분의 일은 죽었을 거요.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집에 들앉아 일절 바깥 출입을 삼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도시를 떠나 멀리 다른 고장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도망을 가지 않는 거죠? 그러다가 감염이 되면 당신도 위험할텐데 말입니다.”

오빠가 이렇게 묻자 검은 옷의 사내는 씽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마저 도망을 가면 죽은 사람의 시체는 누가 묻어주겠소. 사람들은 병이 두려워 시체 만지기를 꺼리니까요.”

이 말을 들은 오빠는 어떤 감동을 느끼며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 혼자서 모든 시체를 운반하고 매장한단 말인가요?”

“처음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지요. 묘지기 영감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영감은 몰려드는 시체를 감당하지 못하여 마침내 쓰러져 죽고 말았어요. 그 뒤부터는 나 혼자 이 일을 하고 있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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