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66)

  • 입력 1998년 3월 14일 07시 5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4〉

“그럼 이제 당신 혼자서 그 많은 시체를 다 매장한단 말이오?”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말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소. 그 일을 맡기기 위하여 알라께서는 나를 이 낯선 도성으로 보내셨으니까요.”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빠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본래는 이 고장사람이 아닌가보죠? 어떻게 이 도시로 오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소?”

오빠가 이렇게 묻자 검은 옷의 사내는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당신처럼 타국 사람입니다. 고향은 카이로인데 성지 순례를 나섰다가 우연히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요. 그런데 내가 이 도시에 들어섰을 때는 전염병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라 길거리에는 온통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지요. 늙은 묘지기 영감 혼자서 그 많은 시체를 매장소까지 옮겨간다, 땅을 파고 묻는다 정신이 없더군요.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영감을 도와 시체들을 매장소까지 옮기는 일을 맡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 영감이 죽은 뒤부터는 시체를 운반하는 일부터 묻는 일까지 모두 내 차지가 된거지요. 이만하면 나도 복이 많은 사람이지요.”

이렇게 말한 검은 옷의 사내는 껄껄껄 혼자 웃었습니다. 오빠도 그를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젊은이, 식사를 마쳤으면 이제 곧 떠나도록 하시오. 나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소. 오늘도 묻어야 할 시체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사내는 벗어놓았던 검은 천으로 다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오빠는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의 음식을 얻어 먹었으니 뭔가 밥값을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소. 나도 당신을 도와 시체를 묻는 일을 하겠소.”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놀란 눈으로 오빠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농담하지 마시오. 보아하니 당신은 부유한 가정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란 젊은이 같은데, 공연한 만용을 부릴 생각일랑 아예 마시고 속히 떠나기나 하시오. 그게 내 수고를 들어주는 거요. 당신마저 병에 걸려 죽게 되면 나는 당신의 시체까지 묻어야 할 테니까 말요.”

검은 옷의 사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오빠도 지지 않았습니다.

“알라께 맹세코, 나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겠소. 그리고 당신한테 내 시체를 묻는 수고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 당신의 일을 나한테도 나누어 주구려.”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다그쳐 물었습니다.

“대체 당신은 왜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내 일을 도우려는 거요?”

그러자 오빠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불행한 도시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알라의 뜻이라면, 내가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알라의 뜻일 테니까 말이오. 그리고, 내가 있어야 당신이 병에 걸려 죽은 뒤에 묻어줄 것 아니오.”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유쾌한 소리로 웃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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