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의 경영책임 문제가 재론되는 것은 지난번 은행 주총이 은행자율과 책임경영이라는 기본원칙을 무시한 데 따른 반작용이다. 지난번 주총은 정부의 은행인사 불개입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치러졌다. 그러나 은행부실화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행장들의 연임과 행장 독주를 공고화하는 엉뚱한 결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에서 은행의 역할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데도 이들 은행장은 새 경영철학이나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 거액결손을 기록한 경영실책이나 경영의 비투명성을 개선하고 보장할 제도적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은행 구조조정은 조직축소나 인력감축 차원에서 맴돌고 있다.
물론 정부가 은행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은행을 지금과 같은 부실덩어리로 만든 것도 관치(官治)금융, 다시 말해 낙하산식 관치인사 때문이었다. 부실은행장의 해임이 정치권력의 입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 해도 금융자율의 입장에서 보면 부작용은 마찬가지다. 은행의 자율인사는 새 정부가 반드시 보장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관행의 정착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부실은행장에 대한 물갈이는 책임경영론만이 아닌 은행 스스로의 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할 은행의 막중한 책무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무릇 모든 개혁이 그렇듯 은행의 자기변혁이 자율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율에 의해 개혁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은행은 과감한 자기개혁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구조조정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대출 위주의 소극적 경영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부실채권 정리를 통해 은행의 자생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평가 및 심사시스템을 갖추고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다. 기업평가 전문가 없이 기업 구조조정은 이끌 수 없다. 국제금융 전문가의 육성도 시급한 일이다. 외채관리와 운용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부실여신을 스스로 축소하지 못하거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은행이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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