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기계류 매매 전문업체들에 매물로 접수되는 중고기계류는 그동안 공작기계나 프레스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인쇄기나 포장기기 등 전 산업분야의 설비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급박한 자금난에 몰려 6억원에 산 신품이나 다름없는 선반기계를 단돈 5천만원에 팔겠다는 경우도 있다는 보도다. 10대그룹 내 주력계열사마저 설비를 내놓고 있어 현재 설비시장에 나와 있는 것만 대략 10조원 규모라는 추정이다.
그런가 하면 전국 공단에는 공장을 판다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고 있다. 높은 환율로 원자재값이 오르고 금리마저 비싸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에 가동률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같은 빈사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전산업의 생산기반이 무너져 산업공동화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할 것이 뻔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산업은 그 나라 경제의 발전단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기술수준이 발전하고 임금이 오르면 저기능 노동집약 산업이 사양화하면서 그 설비가 경영적지를 찾아 후발공업지역으로 이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염색 섬유 신발 등 그동안 우리 산업이 동남아지역으로 생산기지를 다수 옮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와는 또 다르다. 멀쩡한 산업들이 단지 자금사정 때문에 급속도로 공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쉽지 않다. IMF체제를 극복한 뒤 경제회생과 고용회복을 기약하려면 산업기반의 붕괴만은 어떤 방법으로든 막아야 한다.
단기외채의 장기전환 등으로 환율이 안정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큰 위안이다. 그 분위기를 몰아 고금리정책의 수정을 IMF와 적극 협의할 필요가 절실하다. 통화한도에 여유를 확보해 건전기업의 도산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내수기반의 급격한 위축을 막는 일도 요긴하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금융시스템의 정상화다. 연지급 신용장 개설기피로 원자재가 이대로 바닥날 경우 채산성 있는 수출기업마저 공장문을 닫아야할지 모른다. 국가경제 전반이 침몰할지 모르는 위기다. 실업대책도 중요하지만 산업을 살리는 대책은 그보다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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