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여서 유난히 한국을 좋아하는 미국인 사업가 폴 무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작년 12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가 장난감 2백만달러어치를 주문했다. 한국을 돕자는 생각에서 수입선을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돌린 것이다.
무어는 마치 생명줄을 잡은 듯 반색을 하던 한국수출업자가 2월말 태도를 바꾸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외환위기가 끝났으니 수출가격을 15% 정도 올리겠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박모씨도 IMF사태가 터지자 서울로 갔다. 홍콩과 대만에서 구입하던 섬유제품을 한국에서 수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도 최근 마찬가지 경우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수출업자가 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대로 내릴 것 같으니 가격을 올리자고 요구한다는 것.
또다른 사업가 이모씨는 한국업체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전자부품 수입선을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렸다. 이씨 역시 최근 견본품을 받으러 서울에 갔다가 수출업자로부터 “원화가 오르고 있으니 가격을 올리자”는 말을 들었다.
이들 바이어는 애초의 계약을 지키라고 한국 수출업자들을 설득하다 성공하지 못하자 모두 수입선을 바꿨다. 무어는 요즘 미국은행에 가면 “한국을 도와주지 말라”는 말을 할 정도로 화가 났다.
이들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선을 악으로 갚는 한국인들이야말로 경제위기를 오래 가게 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규민<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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