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가로 질러 다시 왼쪽 능선을 10여분 올라가면 1920년대 쿠바 한인들의 초기 정착촌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당시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쿠바 한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다. 대신 현지인들이 이 건물을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쿠바 한인들의 땀이 배었던 과거의 ‘애니깽’농장도 대부분 풀밭으로 바뀌었다.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당시 ‘한인타운’의 중심은 예배당과 한인 학교. 이 건물의 옛 형태는 거의 남아 있었지만 벽은 빗물에 바래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였던 민가들도 몇 채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 헐려버렸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했다.
고 임천택씨는 쿠바 한인1세대로서 30,40년대 이 곳에서 한인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민족혼을 불살랐다. 임천택씨의 장남 임은조옹(71)은 “저 곳에서 내가 태어났는데…”라며 손으로 건물 곳곳을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피델 카스트로와 아바나 법대 동창이었던 임옹은 50년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쿠바 혁명에 참가, 혁명성공후 혁명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현재 쿠바 교민회장을 맡고 있는 임옹은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쿠바 한인들의 최대 숙원사업은 일제강점기가 끝나면서 흐지부지해진 한인협회를 재건하는 일.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인2세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협회준비위원회에서 일하는 박흥선씨(59·식당운영)는 “현재 한인들의 소재지와 가계도를 작성중인데 상당부분 진척됐다”면서 “작년말부터 지역별로 회의를 열었고 지역신문에도 이같은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한인들이 만날 장소도 없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쿠바내 외국이주민중 한인들만 고유한 단체가 없는 실정이다”고 외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은 한국의 홍보물과 항생제 혈액순환제 비타민제 등 의약품, 한국어강좌 개설 등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바나·마탄사스(쿠바)〓정연욱기자〉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