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싸움은 양쪽다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게임’. 최종 승부에서 삼성이 승리할 경우 자동차시장에 신규진입한 삼성은 단번에 메이저 메이커로 부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삼성은 군소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현대가 기아자동차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삼성이란 불씨를 조기에 잠재우고 한국 자동차의 간판기업으로 수위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현대도 궁극적으로 이것을 노리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가 작년에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삼성이 기아를 인수할 경우 삼성은 당장 대우를 제치고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종국에는 현대자동차를 능가한다.
따라서 삼성의 경쟁력 확보를 차단하는 문제는 현대에 생존의 문제로 와닿는 것이다.
현대는 “1백여만대의 소규모 생산능력으로는 2000년대 자동차업체로 생존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에는 1,2개 업체로의 대형화가 요구된다”는 논리로 삼성을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업체로는 세계시장에서 ‘한국차〓싸구려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릴 수 없다. 삼성의 시장참여로 국내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보면 한국차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진다”는 게 삼성의 반박논리다.
대우측은 삼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 대우의 한 관계자는 “삼성보다는 차라리 현대가 낫다”고 말해 현대를 두둔하고 나섰다.
지금의 분위기는 결국 94년 삼성의 승용차시장 진출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업계 전체가 삼성을 적대시하는 형국이 재연된 것이다. 이같은 공동전선의 배경엔 단순히 자동차사업 경쟁 차원이 아닌 삼성의 속성인 1등주의에 대한 경쟁업체의 공포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이 신규 진입한 시장은 항상 과당경쟁이 빚어진다. 물불 안가리는 삼성의 1등주의 기업문화탓이다”고 하는 현대와 대우관계자의 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대우입장에선 현대가 기아를 인수할 경우 현대와 함께 국내시장을 양분할 수 있는 반면 삼성이 기아를 인수할 경우 대우는 3위로 전락하고 결국 고사하게 될 것이란 위기감을 갖고 있다.
현대가 기아자동차 인수추진 계획을 22일 전격적으로 발표한데는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지시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에도 삼성과 숙명의 라이벌의식이 작용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과 현대는 그동안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왔다.
작년 현대가 한보철강 인수를 추진하자 삼성도 한보철강을 인수할 의향이 있음을 내비쳐 현대를 자극했고 94년 삼성이 한국비료(현 삼성정밀화학)를 인수할 때는 반대로 현대가 입찰에 참여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모두가 라이벌의식에서다.
기업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이번 대회전의 서막이 이제 올랐다.
〈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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