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작년7월 기아부도이후 줄곧 자력회생이 기아처리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대우와 함께 기아특수강 등에 자금을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92년경부터 기아인수를 은밀히 추진해온 삼성의 경영권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기아의 전환사채를 매입하는 등 ‘백기사’의 역할도 맡아왔다.
그러다가 작년말부터 현대그룹안에서는 기아의 자력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기아인수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기본전략은 삼성이 대형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성장여력을 갖추지 못하도록 초기단계에서 군소업체로 따돌리는 것.
현대가 이번에 기아인수를 공식화한 데는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안된다”고 한 말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새 정부가 기아처리를 서두르면서부터. 현대는 새 정부 출범이후 핵심 브레인들이 ‘기아를 삼성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감지하고 시기를 저울질해왔다는 것.
한때 새 정부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검토했던 포드가 기아의 부채를 떠안지 않는 조건에서 기아 인수를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나서 인수대상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이를 알고 포드보다 약간 나은 조건만 제시하면 기아 인수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 이번에 기아 인수추진을 공식선언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입장에선 포드가 국내시장공략을 가속화할 경우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다는 것.
자동차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기아를 해외업체인 포드에 헐값에 넘겨주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나머지 현대측에 인수참여를 요청했을 가능성, 즉 물밑의 사전교감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