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풍의혹」 혼란 누가 책임지나?

  • 입력 1998년 3월 23일 21시 00분


‘북풍의혹’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의 할복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정치권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극한대결로 치닫고 있고 경제와 민생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다. 정치권의 자제와 이성적 대처를 요구하는 여론은 발붙일 틈이 없다. ‘해외공작원 정보보고’라는 안기부문건의 진위(眞僞)와 대국민 전면공개 논쟁으로 비화한 정치권 싸움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사안이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나갈수록 수습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북풍의혹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는 것이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의 일부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세상에 이미 공개돼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사항들까지 덮어버리기는 더 어렵다. 여야 정치권은 바로 이 점을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결국 혼란의 책임도, 수습의 책임도 모두 정치권이 질 수밖에 없는 것이 북풍사건이다. 다만 사태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확대된 데는 이종찬(李鍾贊) 신임 안기부장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검증되지 않은 문건이 수사선상에 오른 안기부 전 간부의 손을 통해 유출된 것이나 안기부의 기밀사항이 간간이 언론 등에 비공식적으로 누설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신임 안기부장은 이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

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반발이라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렇다. 안기부문건이 유출되기 전 안기부장은 권영해씨와 면담하고 나서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권씨의 할복에까지 이르렀다. 바뀐 정권의 안기부장으로서 안기부 조직을 초기에 얼마만큼 철저히 장악했는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인사도 제대로 안돼서 일손들을 놓고 있다는 보도다. 혹시 신임 안기부장의 안기부 접근이 ‘점령군’같은 오만하고 권위주의적인 자세로 비쳐져 조직 내외에 불필요한 오해나 저항을 초래하고 이것이 업무수행에 어떤 차질을 빚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나라를 뒤흔들 만한 예기치 않은 대형 정치적 사건의 연속 앞에서는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사건의 불필요한 확산과 증폭을 막아야 할 위치에 있는 책임있는 당국자는 차분하고 냉철해야 한다. 신임 안기부장이 이 점에서 미숙했다면 유감이다. 개인의 책임문제를 떠나 나라가 혼란에 빠져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 불행한 사태는 조속히 수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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