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훈/껌팔이 母女의 눈물

  • 입력 1998년 3월 23일 21시 00분


“경찰 아저씨, 불쌍한 우리 엄마 좀 봐주세요.”

23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계. 지하철에서 친딸에게 껌팔이를 시키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김모씨(50·여·서울 용산구 동자동)가 울다 지쳐 잠든 여섯살배기 막내딸을 품에 안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김씨는 22일 오후 6시경 지하철 3호선 전동차안에서 딸과 함께 껌을 팔다가 아이를 이용한 ‘앵벌이’조직으로 생각한 승객 홍정식(洪貞植·48·서울 은평구 신사2동)씨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가 껌팔이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 두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뒤 딸만 넷을 둔 김씨는 그동안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딸들과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왔다.

서울역 부근의 두 평 남짓한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생활해온 김씨는 그러나 허리병이 도져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김씨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껌팔이를 시작했고 엄마의 고생을 보다 못한 셋째딸(12·초등5)이 따라나섰다.

한 해 가까이 엄마를 도왔던 셋째딸은 그러나 올해 들어 사춘기에 접어든 탓인지 ‘창피하다’며 엄마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대신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딸이 휴일과 평일 방과시간을 이용해 엄마를 따라나섰다.

2백원짜리 껌을 5백∼1천원을 받았지만 말이 판 것이지 대부분의 승객들이 껌을 받지 않고도 돈을 건넸다.

“제가 못배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그랬는데…, 어린것이 고생만 하는 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꼭 따라 나섰어요.”

생활보호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김씨는 어린자식에게 못할짓을 시켰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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