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리뷰]실직 감싼 父情 돋보인 「겨울지나가기」

  • 입력 1998년 3월 24일 07시 56분


실직으로 잃는 것은 직장만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험난한 세상을 살아낼 기력도 송두리째 흔들린다. 세상 모든 것이 내게서 돌아앉았다고 느껴질 때 역시 힘이 되는건 등을 쓸어주는 가족의 따뜻한 위로와 이해일게다.

22일 방송된 KBS 2TV 일요베스트 ‘겨울지나가기’(극본 이현재 연출 고영탁)는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맞아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린 아들의 스산한 내면풍경과 그 아들을 감싸안는 아버지의 웅숭깊은 속내를 그린 단막극이다.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기대를 배반한 채 사진기자가 된 아들은 뜻하지 않게 실직을 당한뒤 고향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 때문에 마지못해 고향을 찾는다.

동네 노인들이 모여앉은 술자리에 제대로 끼지도 못하는 아버지. 화는 결국 아들에게로 돌아가고… 심하게 다투지만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를 연기한 탤런트 박인환은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노인, 아들에게 한바탕 욕을 퍼부어놓고도 뜨끔해 굳은 표정이 금세 허물어지는 아버지를 잘 그려냈다.

드라마의 메시지는 “이 놈의 세상이 왜 이렇게 됐다냐…. 차라리 내가 겪은게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혀. 내 자식들에게는 이런 세상 물려주지 않겄다, 그런 생각으로 살란 말여”하는 아버지의 대사로 표현된다.

그러나 주제의 시의적절함만으로 덮을 수 없는 허점들도 군데군데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밋밋하게 그려진 이 드라마에서 절정의 단계가 될 법한 대목은 아버지가 그동안 몰래 스크랩해둔 사진기사를 아들이 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러나 가시돋친 말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던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게 되는 과정의 극적인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결국 어설픈 습작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극의 전개를 지나치게 설명에 의존한 것도 이 드라마의 약점. 툭툭 잘라먹은 것처럼 앞뒤 연관이 없는 장면과 대사도 눈에 거슬린다.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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