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리판사 봐주기

  • 입력 1998년 3월 24일 20시 08분


검찰의 비리판사 처리결과는 법조계의 개혁이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전 의정부지원 판사 15명이 변호사로부터 1백40만∼9백30만원을 받고 이중 10명은 매회 1백만원 가량의 술접대를 몇차례씩 받았다는 것이 검찰의 발표내용이다.

그 정도라면 재판에 회부해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은 관련 판사들을 징계 요청하는 데 그치고 사법처리를 유보,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검찰이 내세운 면죄부의 법논리는 군색하기 짝이 없다. 15명 전원이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하지만 구체적 청탁관계가 없어 그렇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법률지식이 없는 일반인으로선 무슨 소리인지 얼른 이해가 안간다. 입장이 곤란할 때 흔히 쓰는 법률가의 수사(修辭)로 들릴 뿐이다.

떡값 등 명목으로 1년반 사이 24차례에 걸쳐 모두 9백30만원을 받은 행위가 관행이란 이유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인가. 특정사건을 둘러싼 금품거래는 없었다는 얘기이나 그런 경우를 위해 포괄적 뇌물죄 이론이 생기지 않았는가. 검찰의 이중잣대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판사는 남을 심판하는 자리인 만큼 남다른 준법정신은 물론이고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일반인보다 더욱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검찰의 처리내용을 보면 오히려 관대하게 끝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일반공무원의 경우 몇십만원만 받아도 뇌물혐의로 처벌받는 것이 현실이다. 몇몇 정치인의 경우 구체적 청탁관계, 즉 대가성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해 유죄선고를 받아낸 전례가 있다.

이런 ‘추상같던’ 검찰이 판사비리 앞에서 멈칫하는 이유는 뭔가. 이웃 일본에선 최근 대장성과 중앙은행 비리를 파헤친 검찰이 골프와 술접대를 받은 간부들을 구속했다.

일본검찰이 공직자의 비리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검사들의 절제된 생활이 있다. 반면 우리 검찰이 판사비리를 흐지부지 끝내려는 것은 일부 검사들의 부끄러운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의 판사비리 봐주기는 ‘법조인들은 역시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는 애초 검찰이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수사에 나설 때부터 예상된 일인지도 모른다. 법조계를 개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스레 절감하게 만든 사건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로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로 인해 법조계 전체가 지게 될 부담은 전례없이 무거울 것이 틀림없다. 법조계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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