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앙드레 모루아가 ‘프랑스 패망기’에서 절규한 뼈아픈 교훈이다. 그의 말은 옳았다. 제2차대전 전 프랑스는 히틀러의 침공준비를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독일―프랑스 국경에 국방장관의 이름을 따 철통같은 마지노선을 구축한 바 있으나 국내정치는 당파싸움에 영일이 없었다.
▼ 끝없는 정쟁 佛 패전불러 ▼
6개월이 멀다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무리 상황이 변해도 언제나 여전한’ 붕당주의 정쟁은 멎지 않았다. 입싸움만 벌이는 가운데 나치스 탱크부대가 마지노선을 피해 중립국 벨기에를 거쳐 노도처럼 질주해 파리에 입성했다. 입만 앞세워 말많던 정치인들은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고 상당수는 나치스의 괴뢰가 되었다.
“말하다 망한 조국, 우리는 강해야 한다.”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은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나치 저항운동에 삶을 불살라 자유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는 데 앞장섰다.
나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반드시 패망전야의 프랑스에 비유하려는 비관론자는 아니다. ‘6·25이후의 국난’이라는 시국관 역시 부분적으로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우리가 바짝 정신을 차린다면 능히 위기를 이겨내고 민주주의와 더불어 참된 시장경제를 일으킬 수 있고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본다.
아마도 우리에게 지금은 최악의 시련기이지만 최선의 기회일 수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둔속에서도 새로운 지혜의 물결이 샘솟고 있다. 빛과 어둠, 신뢰와 불신, 실망의 겨울과 희망의 봄이 교차하고 있다. 우리 앞에 결코 최악 우둔 어둠 실망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결심과 행동에 따라서는 최선 지혜 빛 희망 봄을 창조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갈림길이다.
구체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민주적 에너지로 안정과 효율을 이룩하는 것이다. 고통을 능률에 따라 안배하고 다같이 손잡고 살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집단이 고난의 행군에 앞장서야겠고 우선 지겨운 정치싸움을 멎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는 정당정치다. 생각이 다른 정치인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권력쟁탈을 겨루고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자면 거기에는 넘어서는 안될 한계가 있고 최소한도의 행동준칙이 있어야 한다. 그것과 더불어 사는 기량을 두루 갖출 때 민주주의는 안정과 능률로 강한 생산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싸울 때가 있고 거국일치로 싸움을 멈출 때가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달이 되었는데도 행정부의 제2인자이고 국회에 나가 정부를 대표할 헌법상의 총리가 없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만 여야간 고질적인 당파주의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대통령제 헌법하에 ‘여소야대’는 으레 있는 법이다. 국민이 투표로 위임한 입법 행정, 두 민주적 정통성간의 대립은 상호의 정치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제 ‘북풍파동’이 한창이다. 당연히 사직당국이 진상을 밝혀내고 시비곡절을 가려야겠지만 이로 말미암은 정치권의 소모적 시비는 ‘북풍’ 자체에 못지않은 새로운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 빛과 어둠의 갈림길에 놓여 ▼
물론 북에 있는 적과 짜고 안에 있는 적을 때려눕히려 했다면 가히 하늘과 사람이 더불어 분노할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다. 추상같은 응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명명백백한 사실에도 여야간에 보는 눈이 다르고 말싸움으로 국기를 흔들고 있다.
다시 모루아의 경우다. “안전없이 자유없고 단결없이 안전없다.” 사족을 붙이자면 ‘자유없이 단결없다는 것’, 자유 안전 단결의 삼위일체 속에 ‘말만 하다 망한 조국’이라는 참담한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우리는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박권상<언론인>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