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강한섭/「타이타닉」-한국영화의 경쟁력

  • 입력 1998년 3월 28일 20시 28분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이렇게 외쳤다. “나는 이 세상의 왕이다.” 그의 업적에 박수를 치다가 섬뜩해졌다. 그 영화의 제작비 2억8천만달러(약 4천억원)와 첨단 디지털 테크놀러지에 맞서는 충무로 영화의 10억원 제작비와 초보적인 광학 아날로그 기술이 열패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 문화개입 정책 실효적어 ▼

타이타닉과 한국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이렇게 황당하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한국영화가 흥행이라는 시장에서 마주쳐야 할 현실이다. 또 영화의 복제 소프트웨어 경제학은 할리우드의 스펙터클 영화와 수공업적인 한국영화의 판매가를 입장료 6천원으로 균일화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세살 아이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다하는 애국자인 한국인들은 각자의 품성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다. 우선 다혈질들은 장롱속의 금붙이를 팔아 겨우 지키고 있는 경제를 걱정해 ‘타이타닉 안보기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한편 ‘관객들은 결코 애국심으로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지성파들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더 많은 영화기금과 더 적은 세금을 외치며 새 정부를 닦달하고 있다.

그러나 다혈질들은 영화산업을 제작부문으로만 한정짓는 계산착오를 하고 있다. 즉 타이타닉이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1백억원의 수입을 거둔다면 그중 반은 한국극장의 몫이며 나머지 반의 절반도 광고비와 세금 그리고 경상비 등으로 한국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가 선진 문화정책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지성적인 주장도 문제투성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꽤 고상하지만 구제 금융으로 겨우 국가파산을 면한 나라에서는 ‘글쎄’다. 게다가 기금과 세제혜택 같은 정부의 문화개입정책은 실효성도 없다. 서유럽의 영화산업들은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었던 50년대에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문화보호정책의 우산 속에 들어간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산업적으로는 낙후하고 말았다. 보조금은 극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영화들, 좀 가혹하게 표현하자면 시장의 패배자들의 시한부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시장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호정책은 그 정책을 집행할 비대한 조직을 만들게 된다.그러면 보조금의 대부분은 영화의 진흥보다는 조직의 진흥 을위해 쓰이게 된다.이것이‘관료의수는 업무의양에 상관없이 늘어난다’는 무시무시한 파킨슨의 법칙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외부로부터 희생양을 찾는 일은 인류학적으로 흔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점에서 조금 더 히스테리적이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약화된 진짜 원인은 외국영화가 아니라 한국영상산업 전반이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문화체육부 소관이었던 충무로 영화산업은 너무 가난해 기술도 축적하지 못했으며 영화도 조금 만들어왔다. 반면 공보처 담당인 여의도 TV산업은 너무 풍요로웠다.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영화문화가 부실한 나라는 텔레비전 문화를 꽃피울 수 없다는 점이다. 잘 나가는 국가들에서는 예외없이 영화산업은 영상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방송산업은 편성과 송출을 책임지는 산업의 유기적인 분화를 이루고 있다.

▼ 질적 완성도가 승패 좌우 ▼

‘초록물고기’ ‘비트’ ‘넘버3’ ‘접속’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성적과 질적 완성도는 거의 비례관계를 보여왔다. 한국 영화관객의 대부분은 대학생이나 문화적인 신분상승을 꿈꾸는 고졸 직장여성들이다. 관객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문화 엘리트들이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경쟁력은 경제용어다.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정부의 보호정책보다는 시장의 자유경쟁이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질을 더 확실하게 보장해 준다는 점이다.

강한섭<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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