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강원도의 힘」,남녀 강원도 여행길 영상추적

  • 입력 1998년 3월 30일 08시 39분


참 이상한 영화제목도 다 있다. ‘강원도의 힘’이라니. 탄광촌 이야기인가? 아니면 심마니들의 액션?

제목부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이 영화는 한때 깊은 관계였던 여대생(오윤홍 분)과 유부남 대학강사(백종학)가 각각 강원도로 여행갔다가 오는 길을 집요하도록 무심하게 그리고 있다.

현실을 떠나고 싶어 강원도로 갔지만, 그래서 뭔가 달라져서 서울로 돌아와야 마땅하지만 미안하게도 강원도는 아무 힘이 없다.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고 어디 사람이 달라지나? 주인공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들의 삶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극도로 사실적이다. 극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가질 법한 환상을 사정없이 깨버린다.

사실 이 영화에 담긴 것은 ‘일상성의 힘’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희한한 제목의 영화로 주목받았던 홍상수감독은 ‘강원도의 힘’을 통해 최근 학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일상성을 지극히 표면적으로 담아냈다.

일상이란 건 현대인이 가장 지겨워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는 이상한 물건이다.마페졸리가 갈파했듯이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사람사는 방식은 정말 놀랄 만큼 변하지 않는다.

영화속에서 대학강사 상권은 함께 여행온 후배에게 “그 친구랑 여기도 왔었다. 해변도 거닐고, 그 왜 있잖아, 애들처럼 우리끼리 결혼식도 했다. 생각해보니까 진짜 별짓 다했네”하고, 한때의 치열했던 사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처럼 가슴저린 사랑을 했던 남자가 낯선 나이트클럽에서 의무처럼 창녀를 사고 재미없는 섹스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여자 지숙의 집앞까지 가보지만, 자기집에 들어가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와 밥도 잘 먹는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표면을 벗겨보면 뭔가 의미가, 본질적인 것이 있을 것 같지만 별것도 없을 수 있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흐는 ‘범속한 것, 그것이 진실이다’고 했던가.

영화에 담긴 것이 지극히 일상적이듯, 영화를 싸고 있는 것들도 당연히 일상적이다.

전혀 배우같지 않은 배우들은 결코 연기같지 않은 연기를 한다. 백종학은 미국에서 예술학석사를 땄으되 연기경험은 없고 오윤홍 역시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민간인’이다. 촬영과 조명도 ‘우리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영상과 색감’을 미덕으로 삼았으며 감독과 동시녹음기사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이 영화로 용감하게 데뷔했다. 그래서 ‘강원도의 힘’은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같고, 몰래카메라에 찍힌 나 자신의 모습같아 사람을 놀라게 한다.

1부는 여자의 강원도행, 2부는 남자의 강원도행으로 나누어서 짐짓 시큰둥하게 환상없는 사랑을 펼쳐보인 ‘강원도의 힘’은 일어나 나오는 관객의 뒤통수에 “사람사는 게 그런거다!”하며 냅다 강펀치를 날리고야 만다. 그러나 영화 한편에 감동받았다고 어디 사람이 달라지랴. 그랬다면 이 작품의 제목이 ‘강원도의 힘’이 아니라 ‘영화의 힘’이라고 해야맞게? 4월4일 개봉.

〈김순덕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