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엿보기]실체 드러난 「한국형 경제」

  • 입력 1998년 3월 31일 19시 53분


한국의 외환위기를 미인대회 우화(寓話)에 빗대어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은 매년 세계 미인대회에 출전, 10등 안팎의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은 서양인들, 평가기준은 미모와 건강이었다.

한국대표는 성형수술을 심하게 한데다 체력도 좋지 않아 사실상 심사기준에 많이 미달했지만 항상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호흡법 수행법 등 서양에 없는 비방이 있어요. 서양의 기준으로만 평가하지 마세요.”

심사위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말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호성적의 이유였다.

그러나 어느날 한국대표가 각혈을 하며 쓰러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소동을 계기로 심사위원들은 “한국 미녀도 국제기준에 맞춰 평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자 한국 미녀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추락했다.

이 얘기에서 등장하는 미인대회는 국제금융시장, 한국 미녀들은 은행 및 재벌, 각혈한 미인은 한보와 기아, 심사위원은 서양의 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성형수술은 분식결산, 전래의 비방은 정경유착과 채무의존형 경영시스템이다. 한국이나 일본에는 ‘재벌 또는 금융기관은 망하지 않는다’는 ‘아시아적 불패(不敗) 신화’가 있었다.

선단(船團)식 경영과 관치금융 때문에 은행 및 재벌은 정부보증을 받고 있다고 여겼다. 해외시장에서 한국은 통째로 ‘한국주식회사’로 간주됐다.

해외시장에서 한국기업이 발행한 채권이 잘 소화된 데는 이같은 배경이 있었다.

김희동 외환은행 외환분석팀장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모델이 보편적 시장원리에 무릎을 꿇었다”며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은 망한다는 원리가 아시아에서도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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