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권상/北의 태도 달라지는가

  • 입력 1998년 3월 31일 19시 53분


남북관계를 다루고 있는 고위 당국자는 31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달 남짓한데 아직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러나 우리쪽으로서는 대북 경협과 지원,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 추진중이고 무엇보다도 남북이 제삼국에서 뒷거래할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당국자끼리 만나는 공식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

▼ 정부 「햇볕정책」 가속

저들은 조심스럽게 우리 정부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 같다. ‘도움받는 측의 자존심도 생각해야지 이러쿵저러쿵 조건을 달면 어떻게 하느냐, 해달라는 것을 조건없이 해주면 좋은 일이 차차 있지 않겠느냐’고 비공식적으로 말한다. 아마도 6개월쯤 지나면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

이른바 ‘북풍’소동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변화의 조짐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대기업 총수의 방북허가, 대북경제협력에 가해졌던 제한철폐, 65세 이상 고령자의 방북 인정 등 해빙 무드를 조성하는 햇볕정책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완고한 북측이 본질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데 있다. 다소간의 기대를 가졌던 지난달의 4자회담도 미군철수와 미―북간의 평화협정체결 등을 의제로 넣자는 북측의 상투적 주장으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평양방송은 남북관계의 개선전제조건으로 국가보안법 폐기, 안기부 폐기, 비무장지대의 콘크리트 장벽 철폐 등 해묵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공식 통로를 통해 밀가루 옥수수 등 식량지원을 요구하고 이제는 5월말 파종 이전에 비료 20만t을 지원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비료공장 문을 대부분 닫고 있다. 원유를 수입할 수 없어 석유화학 공장이 가동 중지상태이기 때문에 화학비료가 생산될 수 없다. 한편 석유화학산업에서 앞서 있는 우리는 비료가 남아돌아 수출 할 여력이 있다. 북을 돕는데 외국에서 밀가루 옥수수를 사다가 주는 것보다 우리가 만든 비료를 직접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더구나 비료값은 옥수수값의 3분의 1이면 된다. 비료 10만t을 제공하면 옥수수 70만t 증산의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비료 20만t이면 약 4천4백만달러, 우리돈으로 5백70억원의 비용이다. 민간차원에서 벌이는 북한돕기운동으로 불가능하다. 작년 1년간 민간차원의 북한지원 금액은 80억원 정도였고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에 비추어 민간차원의 모금은 훨씬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정부예산에서 도와주어야겠는데 정부로서는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할 것이고 다수 국민은 남북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북한당국에 가뜩이나 우리도 어려운데 정부예산에서 그렇듯 거액의 지원을 선뜻 찬성할는지 의심스럽다.

결국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직접 만나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한 불가침화해 협력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아직 북측으로서는 김대중정부에 대한 입장이 정리안된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측은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남북당국자회담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새 정부가 제안한 특사교환도 응하지 않고 있으나 그렇다고 김대중대통령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지도 않고 험악한 인신공격은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의 변화라면 변화라는 것이다.

▼ 대화-협력의 場에 나서야

한때 남한의 민주인사라고 규정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마당에 김대통령을 가리켜 ‘미제의 앞잡이’또는 ‘파쇼분자’라고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한정부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대화에 응하기도 어려운 논리적 모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북한당국이 허황한 남한적화의 미몽에서 깨어나 남북이 서로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인식하에 평화로운 교류협력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줄이는 단계임을 깨달아야겠다.

박권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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