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 마스터스 결산좌담]『내년엔 1만명 넘을것』

  • 입력 1998년 4월 1일 20시 31분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달리기 한마당’ 제69회 동아 마라톤 마스터스 대회가 29일 경주에서 범국민 축제로 끝났다. 공식 참가 인원만도 6천8백12명. 한국 마라톤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달릴까. 마라톤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걸까. 이번 동아마라톤 마스터스에 진행요원으로 참가한 육상중앙연합회 김원진회장, 풀코스 여자부문 우승자 구정미씨, 풀코스완주자 박남진 양재정형외과원장, 1미터1원모임 사무국장 홍성민씨 등 4인의 좌담을 통해 이번대회의 성과와 앞으로의 방향 등을 알아본다.〈편집자〉』

▼구정미씨〓마스터스 부문에 5년 연속 뛰었습니다. 해마다 낯선 분들을 만나 달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고 나면 경기 하루전과 당일 경주의 풍경들이 눈에 선해 잊을 수 없습니다. 뛰고 난 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 동료들과 연습하던 걸 생각하면 뛸 당시의 아픔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골인해도 더 뛸 수 있을 것 같구요.

◇“6,812명 질서 돋보여”◇

▼김원진회장〓6천8백12명이 참가했지만 성숙한 질서의식으로 아무런 사고없이 끝나 다행입니다. 10㎞에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 경험이 있지만 5㎞의 경우 60%가 처음 뛰는 사람들이죠. 혹시나 이들이 좁은 문을 빠져 나가다 사고날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동아마라톤은 곧 1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회로 클 것으로 믿어요. 그럴 경우 운동장에서 출발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동아일보사가 좀더 미리 치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박남진씨〓경기 당일 날씨가 굉장히 더웠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 달렸습니다. 마스터스는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홍성민국장〓저는 어떤 일을 하든지 즐겁게 하는 편입니다. 전 올해 동아마라톤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제대로 연습을 못했지만 젊음 하나 믿고 뛰었는데 30㎞ 이후는 참 힘들었죠. 낙오자 수송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한 분도 저처럼 힘들다고 하셨는데 서로 이야기하며 격려하다 보니 5시간 넘어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박남진〓이번 대회가 ‘함께 달립시다 함께 이깁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국제통화기금(IMF)시대’라는 현실과 맞물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도 좋은 운동이지만 솔직히 골프는 우리나라에서는 상류층만 할 수 있죠. 그렇게 볼 때 마라톤은 아무런 경제적 부담이 없을 뿐더러 매력있는 종목입니다.

▼홍성민〓동아일보사가 정한 캐치프레이즈는 시기적으로 적당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가족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어깨 처진 아버지와 엷어진 월급 봉투에 쪼들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뛰는 것이 IMF를 이기는 길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동아마라톤이 가장 중요한 가족행사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달리는 모습을 아들 딸들이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짓기를 한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구정미〓저는 남들이 뛰는 걸 보면 삶의 무한한 충동을 느낍니다. 제가 마라톤을 처음 뛰었을 때 신체 구조가 뒤바뀌어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빗물에 씻겨 내린 뒤 땅이 더욱더 다져지는 것과 같죠.

▼김원진〓전 이번에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뛰셔서 기쁩니다. 과연 달리기가 만병통치약이구나라는 것을 의사 선생님들이 직접 홍보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게 제일 좋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박남진〓의학적으로도 뛴다는 것은 건강에 참 좋습니다. 우선 사람이 완주를 하고 나면 기(氣)가 되살아납니다. 자신감과 성취감같은 것이죠. 의학적으로는 신체 기능에 좋은 작용을 하죠. 심혈관 계통과 심폐 기능이 좋지 않은 분은 조깅이나 마라톤이 최고의 약입니다. 특히 고혈압 환자들은 달리기를 통해 혈압을 낮출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구요. 달리면 혈관 운동이 강화돼 혈액 순환이 좋아지고 고혈압의 주범인 콜레스테롤이 혈관에서 씻겨 나갑니다.

▼홍성민〓달리기는 동료애를 키우는 데도 그만이죠. 동호인들과 함께 달리다 보면 서로 진한 동료애를 느낍니다. 풀코스를 한번 뛰고 나면 제몸이 산산조각났다가 다시 조합되는 것 같아요.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죠.

▼김원진〓외국에서는 마라톤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정착되어 있습니다. 자기 능력껏 뛰고 난 뒤 함께 출전한 가족들과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박남진〓저는 해외 대회에 나간 적은 없지만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아마라톤이 열린 날 로스앤젤레스마라톤도 펼쳐졌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여동생이 로스앤젤레스마라톤은 하나의 도시 축제라고 전하더군요. 자원봉사자가 출전 선수보다 훨씬 많고 보조해 주는 시민들도 들뜬 마음으로 돕구요. 그야말로 온 시민이 참가하는 잔치 한마당입니다.

▼구정미〓저는 해외 대회에도 몇번 참가했는데 외국은 지방자치가 잘 돼 있어 정말 동네잔치같더군요. 코스마다 지역색이 뚜렷한 행사도 많이 마련하구요. 대회가 열린 날이 휴일이 아니어도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전 주민들이 일손을 놓고 대회를 지원했습니다. 선수는 1천7백명인데 자원봉사자는 8천명이나 되는 대회도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자원봉사자가 너무 적은 느낌입니다.

▼박남진〓동아마라톤이 이젠 진정한 국제대회로 발전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스터스에 더 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을 겸해 참가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외국의 유명 마라톤대회는 국가별로 참가인원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일단 동아마라톤의 수준을 높이고 일본의 여러 대회에 우리들이 많이 참가하고 꾸준한 교류를 가진다면 동아마라톤도 더 클 것입니다.

▼김원진〓마라톤은 선수들만이 하는 경기라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훈련만 제대로 한다면 마라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역마다 마라톤 동호회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육상聯 코스인도 소홀”◇

▼구정미〓동아마라톤이 해마다 경주에서 열리고 있지만 육상경기연맹의 코스인도가 소홀했어요. 자원봉사자의 사전 교육도 더 철저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홍성민〓동아마라톤이 이제는 문화축제적인 면을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저도 내년 대회에는 제 직업을 살려 ‘보석 전시회’ 등 문화 이벤트를 마련할 작정입니다. 문화 행사도 즐기고 마라톤도 뛰면 ‘꿩먹고 알먹고’가 아닐까요.

▼박남진〓동아마라톤이 마스터스 부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4시간 이상 뛰는 분들에게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5시간까지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제가 20㎞ 지점에 가니 벌써 음료가 동나 있었습니다. 물이 진짜 필요한 시기에 음료대가 철수하니 정말 화가 나더군요.

▼김원진〓마스터스는 순위 다툼이 아닙니다. 우리는 뭐든 1등을 중요시하는데 그건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외국에선 순위다툼보다는 오히려 옆에 뛰는 사람을 도와주며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것을 더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스터스 정신이 확산된다면 내년에는 참가자가 1만명을 넘을 것입니다. 또 대회 한달전 반짝하는 홍보가 아닌 지속적인 홍보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홍성민〓몇몇 분들은 정말 순위에 연연해 양심을 팔더군요. 반환점을 앞에 두고서도 그 중간에 되돌아가는 분들을 꽤 많이 목격했습니다. 내년에는 그런 분들이 한 명도 없는 대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정리〓전창·김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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