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이예숙/『북녁 가족 꼭 만나실거예요』

  • 입력 1998년 4월 16일 07시 50분


“나가 있거라. 이젠 좀 쉬어야겠다.”

아버지는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누우며 말씀하셨습니다. 잠시후 아버지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삼키셨습니다. 북에 계신 부모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얼마전만 해도 아버지는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분들은 막내 아들인 당신을 기다리며 살아계실 거라고 허허로운 웃음을 짓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모양입니다. 제사를 올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도록 보살펴 주실 거라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표현력은 없지만 자상하고 따뜻하신 분입니다. 제가 결혼하고 몇해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친정에 행사가 있어 간 날이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서로 소 닭 보듯 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조심스레 말문을 여셨습니다. “입안의 혀도 깨물 때가 있지.” 그 말씀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이치를 설명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로 사람을 잘못 만났다느니 하는 생각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아버지. 흙냄새를 맡으며 떨어져 사는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실 당신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 옵니다. 이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북에 계신 친척들의 안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도 과실 묘목을 사러 시장에 가신다는 축축한 아버지의 음성을 전화선을 통해 들었습니다. 통일이 되어 식구들을 만나면 당신이 직접 가꾼 나무 열매를 선물하신다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하느님도 저버리지 않고 나랏님도 애써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예숙(경기 성남시 은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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