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⑩]인종 국적 안따지는것이「세계화」

  • 입력 1998년 5월 1일 08시 30분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북벌정책을 편 효종 4년(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 헨드리크 하멜은 동료 선원 38명과 함께 제주도 해안에 표류했다. 14년후 그는 조선병사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탈출,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가 남긴 ‘하멜표류기’는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서적. 이 책을 들여다보자.

“제주도에 표류한 지 이틀 뒤 조선병사들이 쌀밥을 갖다주었다. 주린 배에 음식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가면 탈이 날까봐 처음에는 조금만 가져다 주었다. 그 뒤에는 쌀밥을 많이 갖다줬다. …제주목사(牧使)가 우리에게 어찌나 친절하고 인정스럽게 대했는지… 겨울준비가 시원치 않은 것을 보고는 1인당 신 두켤레와 두둑한 저고리, 가죽버선 한켤레씩을 선물했다.”

약 2백50년이 흐른 1901년. 독일 쾰른의 지방신문 기자 겐터가 서울을 다녀갔다. 그가 남긴 ‘세계여행기’중 ‘코레아’편을 보면 20세기초 조선인의 심성을 알 수 있다.

“조선인은 결코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지 않다. 마음이 온순하고 앞선 문물을 배우려는 자세가 돼있다.”

1백년 가량 뒤인 1998년 4월26일 일요일. 회사원 김모씨(38·경기 고양시 일산구)는 가족과 함께 할인매장 까르푸에 들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초등학교 2학년짜리 막내 아들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빠, 선생님께서 까르푸에는 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우리나라 가게에만 가래요. 저는 안갈테니 아빠만 갔다오세요.”

김씨가 “까르푸가 외국 할인점이지만 판매하는 물건이 대부분 국산품”이라고 거듭 설득했으나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김씨는 결국 두 아들을 차에 남겨두고 쇼핑을 서둘러 마쳐야만 했다.

중견업체 사장인 이모씨(47)는 애용하던 벤츠승용차를 최근 2개월째 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다. 대신 국산 승용차를 이용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벤츠를 타고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욕을 해요. 처음에는 애써 무시했으나 갈수록 심해져서 차를 몰 엄두가 안나요.”

외국은 IMF사태 이후 한국의 외제품 배격 바람을 ‘외국인 혐오증’으로 해석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관련 기사에서 ‘김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최대 난제중 하나는 외국인 혐오증’이라고 지적했다.

IMF사태 이후 실업이 늘고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험한 일을 도맡아온 외국인근로자들을 내쫓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한국생활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간다.

‘외국인의 피부색에 따라 한국인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부끄러운 평가도 들린다. 캐나다인 윌리엄 테일러(33)는 “비행기나 호텔내에서 백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는 친절하기 그지없지만 길거리에서 흑인이나 동남아인을 대하는 태도는 아주 불친절하다”고 꼬집었다.

언제부터 한민족이 외국에 대해 배타적으로 변했을까. 서울대 이태진(李泰鎭·국사학과)교수의 풀이다.

“80년대 들어 학생운동의 주제가 반미(反美)로 잡히면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IMF사태로 외국인과 외국제품을 배척하는 바람도 불고 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감정표현이 서툴러 외국인에게 오해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배타성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한국은 일본제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국가이며 화교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외국인은 한민족이 겪은 일본의 식민지배나 중국의 수천년에 걸친 압박에 대해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우리의 특수성을 납득시키기보다는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세계인의 태도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 제품 역시 국적을 묻기에 앞서 품질을 따지자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국제표준이라는 것이다.

96년 9월 영국 웨일스지방을 방문했던 LG그룹 임원들은 외국인을 대하는 그들의 정성에 감동했다. 웨일스투자개발청(WDA)공무원들이 LG일행을 런던으로 돌려보낼 때의 일이다. 빗속에 한국 손님들을 헬기까지 배웅한 그들은 프로펠러 바람 때문에 우산을 쓰지 못하게 되자 비를 줄줄 맞으면서 헬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LG는 그뒤 26억달러라는 거액의 투자결정을 내렸다.

95년 가을, 한국의 백화점업계인사들과 기자들이 대만을 방문했다. 대만백화점협회 간부에게 ‘타이베이의 일본계 소고백화점 때문에 피해보는 게 없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뜻밖에도 그의 대답은 이랬다.

“타이베이에 있으니 소고백화점은 우리 것이다. 소고에서 값싸고 질좋은 제품을 판매하니까 시민들도 이득을 본다.”

외국에서 한국제품이 칭찬을 듣고 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삼성전자만 해도 올들어 미국 영국 러시아의 소비자보호단체 등으로부터 5개의 상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기업인의 지적대로 우리나라 소비자단체나 언론은 ‘외제품이 한국제품에 비해 질이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지식으로는 아테네보다 못했고 전투력으로는 스파르타에 견줄 수 없었던 로마가 1천년 이상의 번영을 누렸던 원동력중 하나로 ‘로마인의 개방성’을 들었다.

“로마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인이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정복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자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노예에게도 배웠다. 타민족에 대한 혐오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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