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때문에 고통받는 말을 도와주는 겁니다.”
상처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영화 ‘호스 위스퍼러(Horse Whisperer)가 미국개봉(1일)을 앞두고 뉴욕에서 전세계 영화기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말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현대문명에 일그러진 인간의 영혼도 놓치지 않는다. 환갑의 나이에도 미소년같은 매력을 지닌 로버트 레드퍼드가 처음으로 감독 제작 주연까지 맡아 대자연의 힘을 믿는 환경론자로서의 신념을 감동적으로 드러냈다.
호스 위스퍼러란 사나워진 말에게 부드러운 속삭임을 들려주어 치유하는 조마사(調馬師)를 일컫는다.
애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유능하고 자신만만한 뉴욕의 잡지사 편집장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어느날 열두살먹은 딸이 애마 필그림을 타다 떨어진다. 때마침 달려오는 대형 트레일러. 말은 아이를 지키겠다는 듯 차를 막아서다 중상을 입는다. 결국 딸은 다리를 절단했고 말은 미친듯이 사나워졌다.
말을 안락사시키자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애니는 딸과 말을 데리고 호스 위스퍼러 톰(로버트 레드퍼드)을 찾아 서부로 떠난다. 이제 말을 치유하는 과정이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말이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치유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 말(馬)이 말(言)을 듣게 만들려면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나는 너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영혼의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로 믿었던 엄마와 딸,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애니에게 다가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시골 사람들의 유장한 삶의 방식과 호스 위스퍼러 톰의 신비한 치유력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이었던 몬태나는 대도시에서 아둥바둥 쫓기 듯 살아온 애니의 지난 날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완벽을 추구해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을 얼마나 조여왔는지 깨닫게 되면서 애니는 자신을 버리는 동시에 비로소 딸과 화해하게 되는 것이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총 대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서부극의 영웅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실제로 미국서부 샌타모니카에서 태어난 그는 껍데기뿐인 현대문명 속에 대자연처럼 싱그러운 숨결을 불어넣는 호스 위스퍼러 역을 그야말로 육화(肉化)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로버트 레드퍼드의 연출미학은 스크린 곳곳에서 살아난다. 어떤 특수효과나 테크놀러지보다 감동적인 인간의 심리변화와 성장을 그는 자연스럽게 포착해냈다.
시인 랭보는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고 했다. ‘호스 위스퍼러’가 전하는 메시지는 상처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치유되느냐일 뿐. 살아남기 위해 온 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는 우리들. 그러나 정작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무장해제, 그리고 밀접하고도 전인격적인 ‘관계맺기’임을 이 영화는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다. 6월6일 국내 개봉.
〈뉴욕〓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