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IISS 전략문제논평]미얀마 장래 軍部개혁에 달렸다

  • 입력 1998년 5월 1일 21시 00분


《동아일보는 국제정세와 전략문제에 관해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의 독점계약으로 IISS의 간행물 전략문제논평(Strategic Comments)중 ‘미얀마의 조용한 군사혁명’을 요약, 소개한다.》

미얀마군부가 반정부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지 10년이 되는 올해 미얀마는 또다시 정치 경제적 불안을 겪고 있다.

경제는 80년대 후반 이래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해의 홍수피해에다 투기적 사재기가 겹쳐 식료품가격은 급등하고 있으며 환율은 달러당 97년 1백70캬트였던 것이 올 1월에는 3백80캬트까지 폭등했다.

몇년 전만 해도 미얀마의 경제 정치 상황은 지금보다 낙관적이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무역증진과 외국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많은 외국기업들이 미얀마로 진출했고 양곤을 찾는 관광객도 줄을 이었다.

군사정부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95년 카렌민족동맹(KNU)을 제외한 모든 반군단체와 휴전협정을 맺는데 성공했다. 자신감을 얻은 SLORC는 그해 민주국민동맹(NLD)의 지도자 아웅산 수지여사와도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뒤 정치 경제 상황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반군과의 협상에서도, NLD와의 대화에서도 진전은 없었다. 경제발전은 지체됐으며 마약생산과 거래에 대한 경제의 의존도가 커졌다.

군부와 친민주주의 세력간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양곤의 모든 대학은 1년이 넘도록 휴교를 해 우수한 인력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국제적 신용도도 추락, 외국인의 투자자금 회수로 회사는 문을 닫았으며 부동산가격은 폭락했다.

현재 위기의 많은 부분은 정부의 실책에서 비롯됐다. 군 고위층의 상당수가 부정을 저질렀으며 전임자가 내린 경제정책은 후임자에 의해 번복됐다.

군부에도 두가지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장군들과 이에 불만을 품고 있는 비교적 덜 부패한 장교들간의 갈등이다. 두번째는 완전한 군부통치를 주장하는 강경론자와, 반정부주의자와 타협할 것을 주장하는 개혁론자간의 갈등이다.

97년에는 SLORC가 국가평화개발위원회(SPDC)로 대치되는 권력변화가 있었다. SLORC의 최고지도자 4명은 모두 SPDC의 요직을 차지했지만 그 다음 위치의 16명은 SPDC에서 제외됐다. 이들 중 4명은 가택연금됐고 이들을 지지하던 장교들은 감금됐다. 쫓겨난 사람 중 상당수는 심한 부정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강경론자와 개혁론자간 힘의 균형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킨 뉜트를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의 힘이 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에 전군사독재자 네윈(86)이 얼마만큼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88년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해왔으며 지금도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네윈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네윈은 개혁론자의 지도자인 킨 뉜트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얀마와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등 아직도 미얀마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후원자로 남아 있다. 반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은 미얀마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등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강화했다.

97년 미얀마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한 이후 ASEAN국가들은 넌지시 미얀마군부에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등 미얀마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PDC가 SLORC보다 개혁적이라면 ASEAN의 노력은 앞으로 몇년 내에 결실을 볼 것이다. 그러나 SPDC가 계속해서 강경한 길을 걸어간다면 경제 상황 악화와 정치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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