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은 2차전이 열린 30일 자연스럽게 풀렸다. 박동희(30)가 삼성의 선발투수로 나온 것.
박동희는 90년 롯데 입단시 당시 최고액인 1억4천만원에 계약한 국가대표 출신의 강속구 투수. 고려대 1학년때인 86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다승으로 최우수투수로 선정되는 등 일찌감치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프로입단후에는 ‘슈퍼 베이비’라는 별명만을 남긴 채 과거의 인물로 굳어져갔다. 지난해 6월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는 정규시즌 1경기, 포스트시즌 4경기에서 잠깐 모습을 비쳤을 뿐이다.
그의 선발등판은 롯데유니폼을 입었던 96년 7월 현대전 이후 처음. 무려 1년9개월만이었다.
박동희는 이날 2와 3분의1이닝을 던져 안타와 볼넷을 3개씩 내주며 1실점, 2대1로 앞선 3회 주자 1,3루의 상황에서 물러났다.
그가 이날 던진 공은 50개. 전성기때 시속 1백50㎞를 웃돌던 직구는 1백41㎞밖에 나오지 않았다. 객관적으로는 기대이하였지만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박동희나 서감독의 표정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경기전 임호균코치가 박동희에게 주문한 투구수는 바로 50개. 그는 코칭스태프가 요구한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그의 상대는 타자가 아니라 고질적 통풍성 만성관절염이었다. 그는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스포츠과학실에서 금년 2월말까지 3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다. 2군 합류 뒤에도 2이닝씩 두번 등판, 경기당 30∼40개만 던진 게 고작. 하지만 어느때보다도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팀관계자들은 귀띔한다.
박동희는 “2군에서 장호연코치로부터 변화구 승부요령을 배워 큰힘이 된다”며 “올시즌엔 틀림없이 재기해 팬앞에 떳떳하게 서겠다”고 다짐했다.
1m86,98㎏의 당당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적을 못내던 박동희. 그가 프로9년째를 맞아 별명에서 ‘베이비’를 떼고 ‘슈퍼스타’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전 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