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전세금 분쟁,「절반의 양보」로 해결한다

  • 입력 1998년 5월 3일 19시 32분


“남편이 정리해고됐다.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싶다. 계약 만기인 8월말 이전에 방을 빼달라고 할 수 있나.”(서울 수유동 김모씨)

“보증금 9천만원에 전세를 산다. 똑같은 평수의 옆집이 5천만원에 나와 있다. 전세금을 내려달라고 할 수 있나.”(경기 성남 정모씨)

“남편이 2월에 대전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3월말이 만기였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아직 이사를 못하고 있다. 소송하면 얼마나 걸리나.”(서울 목동 최모씨)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02―579―1984∼6)에 상담을 요청한 세 주부의 고민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전세대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올해는 전세계약이 집중되는 짝수 해여서 전세금 반환 분쟁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96년 하반기∼97년 초의 ‘반짝경기’를 틈타 전세금이 급등했기 때문에 전세금 감액을 둘러싼 다툼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 분쟁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 주부의 고민을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의 상담 사례로 풀어본다.

▼ 계약 만료일전 방 뺄수 없다

현행법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전세계약을 중도에 일방적으로 깨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계약’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김씨가 당초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방을 빼줘야 한다’는 약정을 하지 않았다면 집주인이 방을 빼줄 의무가 없다.

이민을 간다거나 입대를 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생긴 경우는 어떨까?

이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경우 법원에 민사조정을 신청해 판사의 중재로 집주인과 합의를 모색해볼 수는 있다. 조정 결과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집주인이 조정을 거부하거나 조정 결과에 대해 14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면 무효가 된다.

▼ 전세금을 깎을 수는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조세 공과금 등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당초 약정한 보증금이 적합하지 않게 됐을 때 남은 기간에 한해 보증금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할 때는 전세계약을 한 뒤 1년 이후에만 가능하고 증액 범위도 당초 보증금의 5%를 넘지 못한다. 정씨 같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깎아달라고 요구할 때는 시기나 금액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아직 감액 청구에 대한 판례가 없어 △시세와 전세금의 차이가 얼마나 돼야 청구가 가능한지 △어느 정도 감액을 해야 하는지 등의 기준이 없다.

▼ 소송보다 합의가 효과적이다

소송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임대차 소송은 통상 5개월 가량 걸리며 1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를 고용하면 최소한 2백만∼3백만원의 비용이 든다.

전세금 반환 분쟁에 대해 재판부는 심리를 하지 않고 상식 수준의 민사조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전세분쟁은 집주인의 과실보다 ‘세상이 바뀐 탓’이 크기 때문이다. 민사조정은 전세금 반환 시한과 그 때까지의 이자율을 정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세금 감액 분쟁은 법정으로 비화한 사례가 아직 없으나 이 또한 조정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감액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경제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이 인정되는 셈이므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정은 증액 청구가 준해 △전세금과 시세의 차이가 큰 경우에 한해 △5% 내에서의 감액을 중재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이렇게 합의하자

국토개발연구원 윤주현 연구위원은 전세금 조정원칙으로 △계약 후 1년 미만이면 당초 계약대로 이행 △1년 이상인 경우 연 5% 범위 안에서 감액할 것을 권고한다.

집주인이 당장 차액을 돌려주기 힘들면 이 금액을 세입자에게서 빌린 것으로 치고 은행대출금리에 준하는 이자를 지급하고 차액 원금은 나중에 갚는다.

계약이 만료되면 전세금을 내리고 재계약하는 것이 좋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처지를 감안해 시세보다 조금 높은 값에 응해주면 재계약이 쉽다.

재계약에 실패한 집주인은 시세보다 싸게 내놓아 가능한 한 빨리 새 세입자를 들이고 종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준다. 자금 사정이 어려우면 보증금 반환시한과 그 때까지의 이자율을 정하고 합의문건에 대해 공증을 받는다.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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