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의 꽃망울이 금방 터질 듯한 봄날 오후입니다. 유난히 겸손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몸에 밴 아버님 어머님.
어느덧 전주이씨 종가에서 계령이씨 종가 며느리가 된지 9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인생의 고난과 기쁨, 그리고 슬픔을 겪으면서도 늘 감사하면서 시련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친딸처럼 염려하고 기도해 주신 두분의 은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안돼 경기 양평 목회관에서 주무시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의식불명인 채 병원생활을 하셨던 어머님. 아범의 사업실패 등을 겪으면서 인간이기에 갈등도 많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잘 나지도 못했는데도 여유있고 시련없이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가끔은 아버님 어머님께 하소연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밤잠도 못 주무시면 어쩌나 싶어 꾹 참았습니다. 이제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속담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결혼전 저는 4남매중 외동딸로 할머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소화기관이 약한 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약으로 살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강골이 됐습니다. 몸은 피곤해서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지만 아이들과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나누기도 한답니다.
IMF한파로 실직한 남편이지만 맑고 고운 심성의 아범이기에 새로운 일터에서 일하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칠순을 넘겼으면서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퇴직한 뒤에도 거문도에서 목회일을 하시는 아버님. 생선을 손수 챙겨와 “에미가 잘 먹고 건강해야 한다”는 따뜻한 말씀으로 눈물나게 하는 당신의 사랑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이순녀(서울 강북구 수유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