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벤츠와 크라이슬러

  • 입력 1998년 5월 7일 20시 05분


독일 최대 자동차그룹인 다임러 벤츠와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중 하나인 크라이슬러가 대륙을 넘어 합병키로 함으로써 국제 자동차시장의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두 회사가 완전히 합쳐지기까지는 아직 몇가지 절차가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합병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촉발할 것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추이가 주목된다.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이 세계적 공급과잉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 회사의 몸집 불리기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고급차만으로 한계를 느낀 벤츠와 대중차시장에서 명성을 얻지 못해 고전해 온 크라이슬러가 상호보완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합병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륙을 넘어선 짝짓기로 벤츠는 북미시장에서, 크라이슬러는 유럽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도 합병의 중요한 목적으로 짐작된다. 양사의 해외전략이 완전히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업체들조차 이처럼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볼 때 국내 자동차업계의 현실은 암울할 뿐이다. 우리 업체들의 재무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비교도 안될만큼 높은 부채비율과 이에 수반되는 금융비용으로 세계적 업체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생산성도 그렇다. 국내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현대자동차조차 근로자 1인당 생산대수가 연간 30대(96년기준)를 겨우 넘어 일본 도요타 다하라공장의 1인당 1백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양적으로 볼 때 작년에는 생산량이 2백85만대에 달해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됐지만 외환위기 이후 내수가 격감해 올들어 설비가동률은 50%에도 못미친다.

2001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살아남을 자동차회사가 10개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는 우리 업계의 조속한 구조조정을 재촉하는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서는 더 이상의 생산능력 확대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몸집을 불려 살아 남으려면 남은 선택은 업체간 전략적 제휴 또는 인수합병밖에 없다.

인수합병은 원칙적으로 시장기능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요즘의 급박한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요구된다. 결국 국내외 기업에 관계없이 어느 업체가 가장 효율적 경영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따라 구조조정의 틀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적 거대기업간 합종연횡은 우리에게 그 대열에 끼지 않을 수 없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업계 모두가 빨리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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