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칼럼］이재춘／유러貨와 유럽통합

2일 브뤼셀에 모인 유럽연합(EU)15개국 정상들은 독일 프랑스 등 11개국이 참가하는 유럽단일통화(유러)를 내년 1월부터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한 나라의 화폐개혁도 엄청난 일인데 무려 11개국이 동시에 화폐개혁을 단행해 통화를 단일화시킨다는 ‘역사적 계획’이 현실화된 것이다.

유러화의 출범으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북부 핀란드에 이르는 유럽 대륙의 3억 인구가 단일통화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미국에 필적하는 경제규모를 가진 단일통화시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유러화에 참가하는 11개 국가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및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20% 정도로 GDP는 미국과 비슷한 규모이며 무역량은 미국을 훨씬 상회한다.

유러화 도입은 2차대전 이후 유럽국가들이 추구해온 유럽통합의 이상과 확고한 신념 위에 이루어졌다. 유럽은 지역 기후 문화 유사한 언어 등 다른 대륙보다는 동질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들간에 갈등과 전쟁이 계속 돼 왔다. 금세기만 해도 불과 20년 사이를 두고 세계대전이 두차례나 있었으며 전쟁의 발원지가 모두 유럽이었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면서 유럽에서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의 길을 모색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으며 이를 유럽통합으로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지금 EU는 서유럽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 동유럽 국가와 지중해 국가까지도 회원국으로 포함시킨다는 원대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유러화의 성공적 운용이 정치통합으로 이어질 경우 이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유러화는 어떤 일회적인 정치적 결정의 소산이 아니라 참가국의 경제적 자격 기준을 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지난 6년 동안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진 가운데 성사된 것이다. 유럽 각국은 10%가 넘는 만성적 실업에도 불구하고 단일통화에 참가하기 위해 긴축적인 경제운용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한편 과감한 개혁정책을 단행해 금리 및 환율의 안정을 달성했다. 이는 현재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큰 귀감이 된다. 또한 유러화는 무역에 있어서 국경의 의미가 퇴색돼 가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출현해 성공 가능성이 더욱 클 것으로 예견된다.

유러화 도입에 따라 세계 3대 경제축의 하나인 EU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확대될 것이다. 다른 한 축인 미국도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더욱 심화시키는 한편 중남미까지 포함하는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을 위해 노력중이다. 반면 정치 경제 안보면에서 취약한 동아시아는 최근의 금융위기로 더욱 곤경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유럽 중심지에서 유럽통합과정을 매일 목도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세계 3대 경제축의 하나가 돼야 할 동아시아의 부진에 착잡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러화 도입에 따라 유럽 각국의 상거래 관행이 상당히 변할 것이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유러화 표시 금융상품도입, 회계 및 결제시스템 변경, 각종 계약서의 유러화 작성 등 사전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유러화 출범과 같은 세계사적 움직임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

EM) 주최국인 우리로서는 유럽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정보화 세계화라는 새로운 변화에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재춘<주유럽연합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