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함께 조깅을 했다.
그러나 조깅에 강한 김대통령이 보조를 맞추지 않고 시종 앞장서 달리자 기분이 상한 라모스대통령은 다음날 김대통령에게 “농구나 한 판 하자”고 제안했다. 라모스는 농구와 골프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농구시합은 불발했지만 이 일화는 승부와 집념에 강한 라모스대통령의 편린을 잘 보여준다.
올해 70세로 6월말 6년 임기를 마감하는 그는 ‘일중독자’로 불렸다. 자명종 시계 두 개를 맞춰놓고 새벽 4시면 일어나 모든 일을 꼼꼼히 챙겨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성실한 자세와 노력 때문인지 그는 집권기간중 ‘아시아의 병자’로 불렸던 필리핀경제를 살려냈고 이슬람교반군과의 평화협상 성공 등 정치안정까지 이루어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리핀은 지난해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올해 아시아경제위기의 여파속에서도 3%안팎의 견실한 성장을 이룰 전망이다.
그가 선택한 경제정책의 요체인 규제완화 민영화 금융개혁 외국인투자 확대 등은 결과적으로 필리핀경제를 아시아 금융위기의 태풍에서 비켜서게 했고 올 3월 35년간에 걸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신탁통치를 졸업하게 했다.
취임당시만 해도 ‘피플파워의 상속인’과 ‘기회주의적 정치인’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들었던 그는 국민적 호평속에 한때 단임제인 헌법을 고쳐 연임을 시도했고 이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연임은 또다른 독재를 부른다”는 국민의 소리에 승복했다. 더욱이 11일 대선에서 야당의 조지프 에스트라다후보(61)가 승리함으로써 그는 평화적 정권교체에 기여한 ‘행복한 노인’으로 퇴장하게 됐다.
〈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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