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족수도 못채우는 국회

  • 입력 1998년 5월 13일 19시 29분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는 시점에 국회가 열렸으나 굴러가는 작태는 너무도 한심하다. 재적의원의 겨우 5분의 1(59명)인 의사정족수도 못 채워 개의가 마냥 늦어지고 회의가 어렵사리 열려도 환란(換亂) 책임을 둘러싼 여야의 ‘네탓’공방으로 입씨름만 벌인다. 엊그제는 몇 그룹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방청하는데도 의원들은 졸거나 자리를 비웠다. 의원들의 눈에는 경제위기도 외국인 투자자도 보이지 않는 것인가.

국회를 외면하고 나오지 않는 2백명 이상의 의원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그들 중 상당수는 6·4지방선거 때문에 지방에 가 있거나 서울에서 출마자들을 만나느라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한다.심지어 회의시간에 의원회관에서 바둑을 두는 의원도 있다는 보도다.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양식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는 15일간의 회기로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의사일정을 협의한다며 열흘을 허송하고 11일에야 회의를 본격화했다. 이틀간의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건성건성 마쳤고 이제는 회기를 이틀 남겨 놓았을 뿐이다.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비롯한 20여건의 시급한 경제 및 민생법안을 졸속처리하거나 또다시 미뤄놓을 것이 뻔하다. 이런 국회에 입법권을 준 국민이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많은 국내외 전문가와 해외언론들은 제2의 외환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국내 정정(政情)의 불안과 은행들의 신인도 하락으로 국가신인도 회복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주가는 끝없이 추락하고 환율도 불안정해졌다. 대대적인 부실기업정리를 맞은 기업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다. 실업자는 날마다 거리로 쏟아지고 노숙자들은 심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노동계는 동요하고 학원도 꿈틀거린다. 국민의 불안은 깊어만 간다.

이런 때에 정치가 앞장서서 경제회생을 돕고 국민불안을 덜어 주기는 커녕 경제회복을 오히려 방해하고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다면 그런 정치는 재앙이다. 정치권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심각하게 자문하고 각성해야 한다. 여야는 지방선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옳다.

우선 여권이 자제해야 한다. 여권은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일거에 강화하려 하고 그 때문에 일부 경제시책의 왜곡도 불사하는 것으로 비친다. 야당도 모든 것을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으려 하지 말고 대국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지방선거 승부가 국가 경제와 민생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지금같은 정치는 역사와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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