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조홍연/팬케이크 굽는 교장선생님

  • 입력 1998년 5월 13일 20시 00분


3년전 미국 서부의 아름다운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가 행여 친구도 없고 선생님 말씀도 못 알아듣겠다며 학교에 안간다고 떼를 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전학수속을 위해 학교에 갔을 때였다. 카운슬러 선생님에게 안내되어 전학 서류를 검토하다가 한글로 된 성적증명서를 가져온 것을 발견하고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걱정하지 마세요”하더니 “너 한국에서 과목 어느 정도로 했니? 평균, 평균이상, 아니면 평균이하”하고 물었다. 몇몇 사항을 확인한 선생님은 “내일부터 학교에 나와도 됩니다”하는 것이었다. ‘서류를 보완해 며칠후 다시 오라고 하겠지’생각하며 난감해하던 나에게는 천사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얼마전엔 6학년 아이들의 수학여행 보조금과 교육자재구입 기금 마련을 위한 중고제품 바자 및 팬케이크세일에 갔다. 학용품 인형 가전제품 자동차용품 헌책 등 내가 보기에는 쓰레기장에 버리기 직전의 낡은 물건들이 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도 어린 학생들은 열심히 팔고 학부형들은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팬케이크 행사장에서는 한번에 20여장의 팬케이크를 구울 수 있는 커다란 가스레인지앞에서 중년의 아저씨 한분이 연방 구슬땀을 닦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그런데 팬케이크를 받아 가는 학부형들이 “좋은 날씨입니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하며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교사와 학생 학부형이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것이 이곳 학교의 특징이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가운데도 보이지 않는 질서는 있다. 좋은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는 대단히 엄격하게 다스려 어려서부터 준법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다.

요즘은 수학여행 보조금 마련을 위해 초콜릿을 팔러 다니는 아이를 보며 외국 아이들까지 이처럼 잘 적응하도록 해주는 이곳의 교육시스템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조홍연(KOTRA LA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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