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IISS 전략문제논평]러재벌, 막강한 정치세력화

  • 입력 1998년 5월 15일 19시 29분


동아일보는 국제정세와 전략문제에 관해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의 독점계약으로 IISS의 간행물 전략문제논평(Strategic Comments)중 ‘영향력 확대 위해 경쟁하는 러시아 대그룹’을 요약, 소개한다.

건강도 나쁘고 인기도 없는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2000년 6월 대선에 다시 출마하기로 결정할 경우 러시아의 금융 및 산업을 쥐고 흔드는 대그룹 총수들이 옐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그룹들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단일화에 실패하면 공산당 후보 또는 공산당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대그룹들은 막대한 재산과 정치인 및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 러시아 정계에서 힘을 키워왔다. 러시아 최대 그룹 창업자들은 대부분 종전에 ‘7대 그룹’으로 불렸던 세력이다. 이들은 96년 옐친의 대선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정지원을 하고 자신들의 TV채널을 홍보수단으로 동원했다.

옐친은 95년말 ‘공기업지분 매각을 조건으로 재정지원을 받는 거래’를 통해 대그룹들을 등에 업었다. 덕분에 대그룹들은 러시아 최대의 원유 및 금속 채굴회사를 헐값에 장악했다.

대그룹들은 그러나 옐친이 승리한 뒤부터는 급속히 분열됐다. 러시아의 남은 국가자산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게 된 것이다.

개혁의 기수인 아나톨리 추바이스는 2월 “러시아는 민주적인 국가권력이 통치하느냐, 아니면 재벌이 통치하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또다른 개혁가인 보리스 넴초프는 대부호들의 힘에 맞서 정부의 원유 및 가스정책을 바꾸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개혁가들이 대부호들의 힘을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들에게 그런 정치적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추바이스 자신이 95년 민영화담당 장관으로 ‘7대그룹’의 급신장을 도와준 핵심이며 재계 엘리트 가운데 가장 막강한 블라디미르 포타닌과도 긴밀한 관계다.

러시아 최대 부호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포타닌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의 막강한 언론재벌인 블라디미르 구진스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작년 11월 베레조프스키가 움직이는 한 언론은 포타닌이 추바이스에게 은밀하게 돈을 건넨 것과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다. 결국 추바이스는 4개월 뒤 해임됐다.

러시아에는 금융 및 정치세력의 핵심이 2개 더 있다. 러시아 최대 기업인 가즈프롬은 사장이었던 체르노미르딘의 정치적 배경이 돼왔다. 가즈프롬이 밀지 않으면 체르노미르딘에게는 승산이 없다.

모스크바은행과 여타 사업체 및 부동산 네트워크는 정치적으로 더욱 강력하다. 이 세력은 유리 루츠코프 모스크바시장이 장악했다. 루츠코프는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정치인이자 선거전문가다.

대부호들은 루츠코프를 기피한다. 그가 자기들에게 빚진 것이 없고 불법적인 민영화 작업을 뒤집겠다고 위협해왔기 때문이다. 루츠코프와 포타닌은 2000년 대선에 앞서 동맹협상을 하고 있다.

베레조프스키와 동맹자들은 현 체제 안에는 루츠코프나 공산당 후보를 꺾을 만한 후보감이 없다고 믿는다. 몇몇 대부호는 끝내 루츠코프와의 결탁이 무산되면 알렉산더 레베드를 영입할지도 모른다. 대부호들은 한편 곤궁하게 살고 있는 군부에도 눈웃음을 친다.

러시아의 정치상황은 유동적이다. 대부호들은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거나 루츠코프에게 ‘재산보장’을 타진하기도 하고 다른 인물은 없는지 살피기도 할 것이다.

대부호들은 ‘이러다가 공산당이 집권한다’는 절박한 위협이 닥쳤을 때에만 후보단일화로 연합할 것 같다. 이들이 연합전선을 펼 때는 이미 때가 늦었을 수도 있다. 그 때 이들이 희망을 걸 것이라곤 대대적인 투개표 부정을 저지르거나 군부에 개입을 호소하는 것 뿐이다. 어느 쪽이든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불안에 빠뜨리고 끝장내 버릴 수도 있다.

〈정리〓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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