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憲裁의 여야논쟁

  • 입력 1998년 5월 15일 19시 29분


“대학축제 때나 보는 모의(模擬)재판 아니냐.”

국무총리서리와 감사원장서리 임명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14일 헌재 3차 공개변론을 지켜본 방청객들의 소감이다. 재판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법조계 출신 정치인들이 서로 헐뜯는 양상이 모의재판의 익살보다 더 재미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관전평.

이날의 공방은 국민회의측이 “무릇 자기 손이 깨끗해야 법정에 나서는 법”이라며 청구인인 한나라당의 ‘과거’를 문제삼으면서 시작됐다. 이어 “한나라당 사람은 집권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 경제를 망치고 조작된 용공시비를 일으켰다” “청구인 중에도 그 장본인이 있다”면서 무슨 낯을 들고 재판을 거느냐는 투였다. 이에 한나라당측은 “여당은 자신들이 50년만에 선거혁명을 했다며 이제는 헌법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려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나라당 의원들을 죄인처럼 싸잡아 몰아치면서 왜 그런 ‘더러운 손’들을 빼내가려고 난리냐’고 물었다.

감정이 달아오르자 한 상대측 법대 교수에게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고 취조하듯 물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쌍방은 말끝마다 “헌재는 신성한 헌법수호기관이다”고 말했지만 그저 제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일 뿐이었다.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중요한 사건이 끝날 때마다 정치인들의 발언록을 모아 책을 만든다고 한다. 현실과 법리를 조합한 정치인들의 절제되고 치밀한 이론구성을 참고하기 위해서다. 최고의 법규범인 헌법을 논하는 자리가 절제된 언어와 냉철한 논리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탁한’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법리논쟁이라고 하더라도 고함 비방으로 일관하는 것은 참으로 딱하다.

신석호(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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