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2환란은 막아야

  • 입력 1998년 5월 17일 20시 10분


제2의 외환위기를 예고하는 진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제적 상황도 지난 연말과 유사하거니와 국내 경제흐름이나 정책당국의 자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제2의 외환위기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희망과 위안을 주지만 그렇다고 결코 현상황이 낙관적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로 환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지난 연말의 상황과 비슷하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실망한 외국투자가들이 빠져 나가 주가폭락이 일어나는 것도 당시와 다르지 않다. 뉴욕금융시장에서 한국계 채권금리가 오르고 우리 은행과 기업의 자금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것 역시 그때와 같다. 일부 금융인들은 수개월내 우리 금융시스템의 붕괴까지 예언할 정도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정부의 정책대응이 환란(換亂)직전과 일부 닮았다는 점이다. 재벌그룹의 도산이 임박했는데도 파장을 걱정해 정리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계기업에 대한 협조융자가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것도 요즘의 실상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해 구조조정의 범위가 좁혀지고 시간이 지연되는 것도 환란당시와 유사하다. 구정권과 딱부러지게 다른 점이 무엇인가.

금융기관 정리만 해도 그렇다.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도태시키겠다고 천명한 것이 엊그제인데 껍데기만 남은 종금사를 산업은행에 떠안기는 것이 오늘날 정책당국의 모습이다. 부실은행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상식밖의 뭉텅이 돈을 지출하는데도 책임을 묻기보다 부실채권을 대신 갚아 주기 위해 국민이 낸 세금에서 수십조원의 재정을 사용할 궁리나 하고 있다. 순서가 틀렸다.

정책당국자들의 현실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각종 경제지표를 솔직하게 밝혀 투명성을 얻기보다 불리한 수치는 숨기려 들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외환보유고가 환란 직전과 비슷한 3백여억달러에 불과한데도 외환수급상 문제가 없어졌다는 당국자의 말은 한순간에 보유 외화가 바닥나던 작년 연말의 사태를 잊은 듯해 불안하다. 인도네시아와 달리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어 제2의 환란이 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안이한 것이다. 국제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실상을 과감히 드러내 정직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상황이 처음의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데 정부의 대응방법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면 결과도 같을 수밖에 없다. 위기관리가 아니라 경제전쟁을 치른다는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선택과 집행은 단호하고 신속하며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제2의 환란을 막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